북한 입장에선 지난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경험했던 '하노이의 굴욕' 이후 절치부심한 결과로 내놓은 미사일 카드가 현재까진 미국을 자극하는 데선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음 수도 당연히 준비했을 것으로 본다. 미국이 북한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경우까지 염두에 둔 추가적인 변칙 플레이다. 다음은 대북 전문가들이 짚은 북한의 다음 도발 수단과 시나리오다.
①SLBM 잠수함 대놓고 과시=정영태 동양대 미래군사과학연구소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잠수함 카드를 만지작거릴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잠수함 카드’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뜻한다. 정 소장은 “북한이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서 대놓고 SLBM 잠수함 건조 작업을 활발히 보여주면서 미국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8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형. [사진 노동신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5/14/d0997c9b-4ad8-451d-9371-0c2d47730541.jpg)
2016년 8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1형. [사진 노동신문]
북한은 여러 차례 실패에도 불구하고 2016년 8월 24일 SLBM인 북극성-1형을 발사했다. 당시 이 미사일은 500㎞를 날아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 안쪽에 떨어졌다. 한ㆍ미 정보당국은 북한의 SLBM 개발 속도에 놀랐다. 5년 후에나 실전배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북극성-1형은 최대 사거리가 1000㎞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잠수함을 은밀히 움직이면 미군 기지가 있는 오키나와ㆍ괌ㆍ하와이를 노릴 수도 있다.
북한은 2017년 2월 12일 북극성-1형을 지상 발사용으로 개조한 북극성-2형의 시험 발사에도 성공했다. 또 북극성-1형보다 사거리를 크게 늘린 북극성-3형도 개발 중이다.
②동창리 다시 한번=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눈길을 당장 끌 수 있는 동창리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동창리는 북한이 로켓엔진 시험 시설과 발사대를 만든 뒤 ‘서해 위성 발사장’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북한이 우주발사체(SLV)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장거리미사일을 여기서 개발했다. 2017년 3월 18일 액체연료를 쓰는 신형 고출력 엔진인 백두 엔진의 연소 시험도 동창리에서 성공했다. 백두 엔진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4형과 화성-15형의 엔진으로 쓰인다.

평북 동창리 발사장
문 센터장은 “북한은 비핵화 협상장의 판돈을 키우기 위해 동창리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겠지만, 이는 최후의 카드로 남겨두기 위해 당장은 쓰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에 위성발사를 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 위해 북한의 우주개발기구인 국가우주개발국(NADA)이 우주의 평화적 이용 계획을 발표하거나, 동창리에 새로운 시설을 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③ICBM 이동식발사대 보여주기=전략군은 단거리와 중거리, 장거리 탄도 미사일부대를 통합 지휘·통제하는 북한의 군 조직이다. 북한은 2012년 전략로켓군을 공개했고, 2014년엔 전략군 창설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4일과 9일 미사일을 발사하면서도 전략군을 전면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김락겸 전략군 사령관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박정천 포병국장이 나서 전술 훈련이라는 점을 강조했을 뿐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가운데)이 2017년 8월 화성-10(무수단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뒤 웃고 있는 모습. 김낙겸 전략군사령관(왼쪽 첫번째) 등 수행원들이 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제공=노동신문]](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5/14/012298e7-f171-4f60-a93b-27b3cfc4d61e.jpg)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가운데)이 2017년 8월 화성-10(무수단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뒤 웃고 있는 모습. 김낙겸 전략군사령관(왼쪽 첫번째) 등 수행원들이 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제공=노동신문]
미·일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한반도만 사정권에 넣는 무기도 이미 전략군은 보유하고 있다. 사거리가 각각 300㎞와 500㎞인 스커드-B와 스커드-C다. 또는 전략군이 운용하는 대형 이동형미사일발사대(TEL)를 긴급 전개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을 노린 ICBM이나 일본을 겨냥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하지 않고서도 압박 메시지를 던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북한이 9일 쏘아올린 미사일에는 ‘ㅈ107120893’이라는 일련번호가 쓰여 있었다. ‘ㅈ’은 북한의 전략군, 또는 전략로켓을 뜻하는 약자라는 게 군 안팎의 중론이다. 북한 전략군이 이 미사일을 다시 갖고 나와 최대 사거리인 500㎞까지 발사할 수도 있다. 9일 추정 비행거리인 420여㎞보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 적절한 긴장감을 유발하겠다는 의도다.
④잊고 있던 무인기 재출격=북한이 무인기 도발을 하고,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무인기를 남측으로 보내는 건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면서 “하지만 북한이 잡아뗄 경우 이를 입증하기 쉽지 않아 정부의 입장이 곤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무인기 도발 사례는 2014년 3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총 5차례 발견됐지만 북한이 이를 인정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이 2017년 6월 서울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북한 소형 무인기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5/14/6e24caad-f54e-467b-902c-66860a40b1b8.jpg)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이 2017년 6월 서울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북한 소형 무인기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무인기는 북한 소행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후유증이 상당하다. 류성엽 연구위원은 “군사합의 위반으로 결론 내리면 한·미가 대북 대화 국면을 이어가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며 “오히려 북한이 원하는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 류성엽 위원은 “문을 걸어 잠그려는 북한에 필요한 건 명분”이라며 “한·미가 먼저 협상판을 뒤엎기를 북한이 유도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철재·이근평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