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발사 후 첫 공식 석상에 선 해리스 대사와 에이브럼스 사령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북한이 2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동해로 쏜 다음 날인 26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와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ㆍ미연합군 사령관이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국가보훈처가 이날 연 유엔 참전용사 재방한 감사 만찬장에서다. 두 사람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1950년 당시 유엔의 깃발 아래 16개 나라의 군인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를 분명히 강조했다.

해리스 대사는 “여러분은 한국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며 “한국은 경제 강국이 성장하고 있고, 민주적 가치와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가 됐다”고 치하했다. 그리고 “지난해 북한과 관련해 역사적이고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제1차 북ㆍ미 정상회담을 말한다. 이어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으로 마련했던 평화를 발판으로 더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ㆍ미연합군 사령관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ㆍ미연합군 사령관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내 가족은 대대로 군인 집안이며, 부친과 형제들도 한국에서 복무한 이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가 많은 것을 누리는 이유는 바로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희생하고 헌신한 참전용사의 정신을 우리가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아버지인 크레이튼 에이브럼스 주니어는 53년 한국에 배치돼 정전을 지켜봤다. 작은형 존 넬슨 에이브럼스 예비역 미 육군 대장도 93~95년 한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서울 용산에서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옮겨진 월턴 워커 장군 동상. 이 동상은 미 8군의 상징이다. [중앙포토]

서울 용산에서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옮겨진 월턴 워커 장군 동상. 이 동상은 미 8군의 상징이다. [중앙포토]

 
미군 장성들 가운데 에이브럼스 사령관처럼 대를 이어 한국의 방어를 책임진 가문이 여럿 있다. 6ㆍ25 전쟁 초기 “죽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방어하라(Stand or Die)”는 명령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월튼 워커 미 8군 사령관이 대표적이다. 당시 그의 아들 샘 워커는 최전선 소총 중대장(대위)으로 참전했다. 아버지 워커 장군은 1950년 12월 23일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아들 샘을 축하하러 가던 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워커 장군의 후임 제임스 밴플리트 미 8군 사령관도 역시 부자(父子)가 전쟁에서 함께 싸웠다. 그의 아들 짐 밴플리트 중위는 당시 미 공군의 폭격기 조종사였다. 짐은 그리스에서 근무하다가 본국에 돌아와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해외 근무를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그는 자원해 아버지와 같은 전선(戰線)에 배치됐다. 52년 4월 4일 짐은 야간 출격에 나선 뒤 귀환하지 못했다. 그에 대하 수색ㆍ구출 작전이 이뤄졌지만, 가망이 없자 밴플리트 장군은 작전 중단을 명령했다.

피우진 보훈처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피우진 보훈처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처]

 
피우진 보훈처장은 “유엔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