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 탑골공원 인근에서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노인들에게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15/c1995dca-8487-4e53-a3b8-439aee09b1e1.jpg)
지난 3월 서울 탑골공원 인근에서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노인들에게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 ‘저소득층 마스크 보급’에 574억원을 책정했다. 올해 추경 예산(194억원)보다 380억원 늘렸다. 저소득층 246만명에게 1인당 연간 50매씩 돌아간다. 다 국민 세금이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 미세먼지 마스크를 나눠주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늘린 포퓰리즘 예산이 불요불급한 데 쓰이면서 현장 곳곳에서 ‘재정 소화불량’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취지 좋아도 현장선 줄줄 새는 재정.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헛다리 짚은 미세먼지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폐차 보조금이 오히려 경유차 구매비를 보조하는 식으로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은 늘렸지만 현장 집행 실적도 낮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와 배출가스저감장치(DPF) 부착, 건설기계 엔진 교체 등 배출가스저감사업은 올 8월 말 기준 실적 달성률이 모두 50% 미만으로 나타났다.

인천 서구의 한 자동차 정비소에서 경유차 2대에 배출가스저감장치(DPF)를 부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다소 황당한 대책도 있다. 미세먼지 차단 숲 조성에는 450억원을 편성했다. 미세먼지 발생원 주변에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숲을 조성하는 내용이다. 예산정책처는 ‘2020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미세먼지 차단 숲의 평균 조성 면적이 2ha(헥타르) 수준이고 폭이 3~10m에 불과해 차단 효과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탕 삼탕 ‘소부장’

예산 내년 얼마나 늘렸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o.kr
‘장기간 걸리는 R&D 과제를 단기 기획을 통해 일률 추진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R&D 투자 여력이 부족한 기업의 경우 과도한 R&D 자금을 지원하지 않도록 사업을 관리해야 한다.’
‘중소ㆍ중견기업 연구개발비 상당 부분이 인건비로 지출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국내 4대 과학기술원 중 한 곳에서 연구하는 A 교수는 “정부가 이른바 ‘3책 5공’(1명의 연구자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과제는 최대 5개 이내, 그중 연구 ‘책임자’로서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과제는 최대 3개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앞세워 예산 편중을 막겠다고 했지만, 연구 책임자가 아닌 일반 연구인력을 책임자로 내세워 예산을 중복 지원받는 관행도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 등 6대 분야 핵심 100개 품목의 조기 공급 안정화’ 명분을 앞세웠지만, 일본과 관련 있는 예산이란 이유를 들어 비공개로 추진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예산정책처는 보고서에서 “전략 품목과 지원과제 선정을 비공개로 추진하는 건 향후 과제 선정의 공평성 문제와 정책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산 ‘규모’ 보다 ‘내용’이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정승환 예산정책처 과장은 “2016~2018년 종료한 소재부품 기술사업 241개 과제 중 실제 사업화에 성공한 과제는 17개(7.1%)에 불과했다”며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상용화 가능한 단계뿐 아니라 기업이 가진 기술을 양산 단계로 발전시키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밑 빠진 독 물 붓는 ‘일자리’
문제는 시간이 들더라도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보다 단기에 성과를 내기 좋은 ‘직접 일자리’ 창출에 예산을 집중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실업 소득 유지ㆍ지원(10조3000억원)에 가장 많이 쓴다. 실직자의 임금을 보전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다. 장기 고용을 보장하는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직업 훈련(2조2000억원)이나 창업 지원(2조3000억원) 예산을 늘려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도록 지원하는 게 낫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 예산 대부분이 사실상 복지 예산으로 ‘반짝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민간에서 투자ㆍ고용을 유발하는 쪽으로 일자리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는 ‘묻지 마’ 증액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가운데)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특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증액이 두드러졌다. 국토위는 심사 과정에서 안성~구리 고속도로 사업 관련 예산으로 3062억5700만원을 증액했다. 이천~오산 구간 도로 공사엔 1765억원, 함양~울산 고속도로 공사엔 720억원을 늘렸다. 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위원회는 경북 구미 스마트 산단 관련 사업(156억원), 울산 산단 통합관리센터 착공(36억원) 예산을 늘렸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부분 상임위 지역구 의원의 이해관계가 얽힌 예산”이라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SOC 사업의 경우 일단 시작하고 나면 중단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모든 상임위가 예비심사를 마치고 예결위에 넘길 예산안 증액 규모(정부 안 대비)는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해 예산 심사에선 상임위 17곳 중 기재위를 제외한 16곳이 지출 요구액을 정부 안보다 늘렸다.
세종=김기환·허정원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