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3스타 ‘밍글스’ 강민구 셰프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던 와인 바 셰프에게 들었던 소리다. 젊은 견습생은 묵묵히 자기 길을 갔고, 마침내 미쉐린 가이드 3스타를 받는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가 됐다. ‘밍글스(mingles)’의 오너 셰프 강민구(41)씨의 이야기다.
지난달 27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5’ 발표에서 강 셰프는 3스타 레스토랑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014년 청담동의 한 건물 지하에서 밍글스를 시작하고 11년 만이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시작된 2017년에 1스타, 2019년에 2스타에 이은 ‘성취’로 강 셰프는 흔들림 없이 ‘새로운 한식’을 연구했다.

강민구 셰프가 ‘밍글스’에서 포즈를 취했다. 미쉐린 가이드 3스타는 맛, 인테리어, 술, 서비스까지 최고로 어우러진 식당에 주어진다. 최기웅 기자
“요리에 재능 없다” 한 셰프는 지금 뭐라고 할까.
“지금도 엄청 친한 사이다.(웃음) 현재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명한 분인데, 미쉐린 발표 후 바로 전화로 축하해주셨다. 첫 직장이라 뭘 해도 어설퍼 혼도 많이 났지만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어렸을 때 꿈은 뭐였나.
“서울 강동·송파 지역에서 자란 평범한 아이였다. 또래들처럼 국·영·수, 피아노·서예·주산 등 여러 학원에 다녔지만 집에서 요리책 보며 음식 만들기가 더 좋았다. 부모님은 요리책을 사주시면서도 ‘하다 말겠지’ 하셨던 것 같다. 조리고등학교를 가고 싶다니까 ‘인문계 고교를 가라. 그러면 대학은 원하는 곳으로 가도 좋다’고 하셨다. 회사원·전업주부인 부모님은 생계를 위해 아등바등 살았던 기억 때문에 아들만큼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기를 바라셨다. 밍글스 오픈 때 집 담보로 대출을 받아건넬 만큼 나를 믿어주셨는데 그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밍글스가 잘 되고 좋은 상을 받는 모습을 하나도 못 보고 가신 게 내내 마음이 아프다.”
식당 이름은 고등학교 때 만들었다고.
“3년 내내 반장을 하며 다른 반 반장들과 그룹 과외를 받았는데 그때 배운 ‘밍글스’라는 단어의 뜻 ‘섞다’ ‘어우러지다’가 좋았다. 이름 ‘민구’와 발음도 비슷해 별명도 ‘밍글’이었다. 과외 선생님이 ‘미래의 직업’을 물었을 때 나 혼자만 ‘요리사’라고 답했더니 ‘민구가 제일 성공할 거다’ 하시더라.”(웃음)
요리가 좋아 책 보며 독학하던 아이
경기대 외식조리학과에 진학한 강 셰프는 낮에는 학교에서 이론을 익히고, 밤에는 와인 바에서 실습을 했다. 와인 바에선 이탈리아 요리를 배웠는데 ‘신세계’였다. “한식은 밑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데 이탈리아 음식은 토마토에 생 모짜렐라 치즈 올리고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만 뿌려도 요리가 되고 맛있더라! 신선한 재료로 최소의 터치와 조리법으로 요리하는 매력에 푹 빠졌다.”
김연아·박지성 선수가 스포츠로 한국을 알리는 걸 보며 청년 강민구는 요리로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가졌다. 23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스페인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무급 견습생으로 요리를 배웠다. 3년 만에 미국의 유명 일식당 ‘노부’에 들어갔고 27살에는 노부 바하마 지점 총주방장이 됐다. “당시 미식계는 뉴아메리칸, 뉴스페니시, 뉴노르딕 등이 유행이었다. 전통음식을 새롭게 재해석한 요리들이다. 자국 음식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깊이 있게 연구하고 새롭게 접근하는 태도가 멋졌고, 한식에도 활용해보고 싶었다. 노부에 갔던 것도 어떻게 일식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나 궁금해서였다.”
노부에서 한국 된장을 이용한 푸아그라 메뉴를 선보였다.
“노부 바하마에서 총괄주방장을 지낼 때다. 노부에선 일식 기반의 시그니처 메뉴 70%를 유지하되, 30% 메뉴는 총괄주방장 재량 하에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다. 그때 된장 소스를 이용한 푸아그라, 일본 와규를 쓴 비빔밥 등을 만들었다. 자신들이 잘 하는 메뉴와 함께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를 개발해 로컬 피플이 즐기도록 하는 게 노부의 매력이었다.”
본격적으로 한식을 공부한 건 귀국 후 밍글스를 열고 난 후다.
“처음 밍글스는 한식을 기본으로 일식·중식·동남아 음식을 다 아우르는 컨셉이었다. 당시 파인다이닝에 반상 메뉴를 포함시킨 것도, 전통주 페어링을 시작한 것도 밍글스가 처음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한식’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길게 연구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 해외에서 배운 요리에 으레 먹어왔던 한식을 더하는 수준이라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했다. 그때 조희숙 셰프님(2020년 아시아 베스트 여성 셰프 선정)과 정관 스님(백양사, 사찰 음식 대가)을 알고 눈이 뒤집혔다. ‘한식이 이런 거였구나, 채식의 세계가 이런 거였구나!’ 휴일이면 백양사로 달려갔고 최현석·안성재 등 파인 다이닝 셰프들을 모아 조희숙 셰프님 한식 클래스를 들었다. 이때가 ‘요리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한식의 원형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기에 나만의 터치로 자유롭게 새로운 한식을 할 수 있게 됐다.”
‘한식의 재해석’이라는 말은 전통 한식은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K팝도, 오징어 게임도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지만 전통을 이야기하는 콘텐트는 아니다. 한식에는 이런 모습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한국에선) 다른 장르 음식을 하더라도 한국 식재료를 쓸 수밖에 없다. 결국 한식과 연관된다. 젊은 셰프들에게도 늘 ‘한식의 기본을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강 셰프는 지난해 3월 우리 장을 소재로 한 영문판 책(『JANG: The Soul of Korean Cooking』)을 출간했다(한국 번역본도 발매). 전통 장이 가진 가치와 함께 장을 활용한 다양한 음식 레시피를 소개했는데 한식과 서양음식을 7대 3의 비율로 섞었다. “우리 장의 특성과 본질을 알아야 제대로 된 다양한 활용도 가능하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먹어봤더라도 그 맛에 일단 빠지게 되면 프리미엄 제품과 고급 한식문화에 대한 욕망 또한 커지기 때문에 영미권 미식가들에게 한국의 장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
한식 본질 꿰뚫는 뉴 한식이 철칙
![다양한 식재료를 각각 정성스레 요리한 다음 멸치육수와 함께 떠먹는 ‘멜팅팟’. [사진 밍글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3/08/433db327-f3a1-4b07-ae51-784e505efad6.jpg)
다양한 식재료를 각각 정성스레 요리한 다음 멸치육수와 함께 떠먹는 ‘멜팅팟’. [사진 밍글스]
디저트 ‘장 트리오’는 정말 대단한 메뉴다.
“밍글스 초기 때 디저트까지 혼자 다 만들었다. 프랑스 디저트 크렘뷜레가 만들기 쉬워 시도하다가 ‘된장 맛을 조금 섞어볼까’ ‘짭짤한 맛을 더해도 좋겠는데’ 하다 간장·된장·고추장을 다 더했다. 한식 중에도 세 종류 장이 다 들어간 음식은 흔치 않아서 괴식이라면 괴식인데(웃음), 11년째 밍글스의 대표 메뉴로 인기다.”
‘장 트리오’라는 명칭이 ‘흑백요리사’에도 나온 걸 보면 PD도 만난 것 같은데 왜 출연하지 않았나.
“당시 목표는 밍글스에 더 집중하는 거였다. 여전히 영상이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아 조심스럽기도 하고.(웃음)”
내성적으로 보이는데 주방에서 소리도 지를까 궁금하다.
“대한민국 3대 무서운 셰프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진짜 화를 많이 냈는데 요즘은 안 그런다.(웃음) 그때 함께 고생했던 친구들과는 여전히 친하게 지낸다. 지난주에 회식도 했다.”
점심 가격 28만원(1인분)은 부담스럽다.
“소수만 즐기는 사치스러운 음식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길거리 음식부터 파인다이닝까지 다양한 카테고리가 존재해야 한식문화가 단단해진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 고급문화는 존재해야 하고 그 낙수효과는 분명 있다. 최근 몇 년간 주목받은 스페인·덴마크·페루 음식은 몇몇 식당과 셰프들이 주목받으며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됐다. 식문화 전반의 가치와 밸류가 커졌고, 관광·식품수출산업도 증가했다. 파인다이닝 식당의 역할을 이렇게 봐주시길 바란다.”
![된장·간장·고추장 세 종류의 우리 장으로 맛을 더한 디저트 ‘장 트리오’. [사진 밍글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3/08/d4de0128-b7f8-4483-ba5d-197572cf3dd0.jpg)
된장·간장·고추장 세 종류의 우리 장으로 맛을 더한 디저트 ‘장 트리오’. [사진 밍글스]
직접 이름을 지었다던데.
“마마리마켓도.(웃음) 내 어머니와 공동대표인 송하슬람 셰프의 어머니도 이씨여서 엄마(MAMA)와 리(LEE)를 합쳤다.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고 유지하면서 파인다이닝 식당을 운영하는 데는 솔직히 엄청난 스트레스가 따른다. 다행히 다양한 컨셉트의 식당을 고민하고 작명하면서 스트레스를 잘 풀고 있다.”
차분하고 조곤조곤하게 할 말은 다 하는 강 셰프에게서 개구진 유쾌함이 느껴졌다. 그의 손끝에서 새롭게 차려지는 한식 역시 진지하고 깊이 있는 동시에 즐거운 혁신이 느껴질 거라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