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분수에 맞춰 승부를…" 이말에 일본 국민 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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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사진 양은심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34)

 
2019년 11월14일은 한국의 수능시험 날이었다. 일본에서도 그 생생한 분위기를 뉴스를 통해 느낄 수 있다. 후배들의 응원, 택시와 경찰 오토바이의 지원, 입시장 앞에서 두 손을 모으는 부모님들, 절에서 기도하는 부모님들…. 입시생을 무사히 입시장으로 들여보내기 위한 한국인의 배려에 혀를 내두른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눈이 쌓여서 교통이 마비되면 시험 시간을 늦추거나, 지각한 학생이 다른 교실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하는 정도의 배려가 있을 뿐이다.
 
일본의 입시 시즌은 이제부터이다. 10월에 원서 접수가 있었고, 2020년 1월 18~19일 이틀 동안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센터시험'을 치른다. 본격적인 입시는 센터시험을 시작으로 3월까지 이어진다. 일본의 신학기 시작은 4월부터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입시 전쟁도 치열하다.
 
수능 합격을 기원하는 학부모들이 합격발원문을 앞에 두고 기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수능 합격을 기원하는 학부모들이 합격발원문을 앞에 두고 기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개천에서 용이 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한 정치가의 말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아주 아름다운 말이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용'이었다는 게 문제이다.
 
일본에서는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성 장관의 말이 물의를 빚고 있다.“자기 분수에 맞춰서 승부해 달라.” 여기서 ‘분수(身の丈/미노타케)’라는 말이 화근이 되었다. 일본은 2020학년도부터 새로운 대학입시제도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그 새 제도의 핵심은 ‘영어 민간시험(英語民間試験) 활용’이다. 고3 동안에 치른 영어 능력 시험 중 2회까지의 성적을 대입 영어시험 대신 활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지방에 거주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학생에게 불리하지 않냐는 여론이 일었다. 이에 대한 답변이 문제가 되었다. 하기우다 장관은 “자기 분수에 맞춰서 2번의 기회를 잘 살려서 승부해 달라”고 말했고, 그 발언이 국민을 화나게 했다. 장관은 그 발언에 대해 사죄를 했고, 결과적으로 ‘영어 민간시험(英語民間試験)’을 도입하는 것은 2024년으로 연기됐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교육수준을 좌우하게 만든다.[사진 pixnio]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교육수준을 좌우하게 만든다.[사진 pixnio]

 
한국이나 일본이나 부모의 경제 능력이 자녀의 교육 수준을 좌우하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일본에서는 조부모의 경제 능력이 아이들의 교육 수준을 좌우한다는 말까지 나돈다. 학원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학교 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은 학교 교육 이외의 사교육을 전제로 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개천 행복론’이나 ‘분수에 맞는 승부’. 이 말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다. 어찌 보면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이라는 말과도 연결된다. 문제는 이 말을 누가 하느냐이다. ‘개천 행복론’은 정상에 있는 사람이 개천을 내려다보며 할 말이 아니다. 개천에서 사는 사람이 했을 때 의미가 생긴다. ‘분수에 맞는 승부’라는 말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자가 하면 거만한 말이 된다. 현재 노력하는 사람이 겸허한 마음으로 써야 하는 말이다. ‘용’이 된 사람이 이런 발언했을 경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된다. 가난한 내가 '내 분수에 맞게 살아갈 거야'라고 다짐하는 것과 부자가 '분수에 맞게 살면 되죠'라고 말하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
 
굳이 용이 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는 사회가 건전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도 코피 터지며 공부를 하면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자식은 부모의 경제력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학교 교육에 의지하며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가정에서 가정교사를 데리고 좋은 입시학원에 보내는 것까지는 뭐라 하지 않겠다. 그러나 입시전문가가 ‘분석’이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정체를 알수 없는 입시제도는 만들지 말았으면 한다.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가정의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높은 장벽이다.
 
한국에 있는 친정 조카 중에 고1인 아이가 있다. 친정 나들이 때에 보니 9시가 넘어서 학교에서 돌아왔다. 고생했다며 반기는 데 학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귀가하는 것은 11시 반쯤 된다고 했다. 등교 시간도 빠르다고 했다. 대체 잠은 몇 시간이나 자나.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는 초/중학교부터 입시경쟁이 치열하다. [중앙포토]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는 초/중학교부터 입시경쟁이 치열하다. [중앙포토]

 
우리 집 두 아들은 한국인 엄마의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고3이 될 때까지 놀며 다녔다. 그래서인지 일류대학에는 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1차 지망 대학에 떨어져서 좌절을 경험하기는 했다. 그 이유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를 배우고 성장해 가는 거라고 믿고 싶다. 일본에서도 일류대학을 목표로 삼는 가정에서는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입시부터 치러내며 대학입시 때까지 치열하게 공부한다. 그러니 입시제도는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입시 정책으로 아이들을 혼란하게 하지 말자. 완벽한 제도는 없다. 가능한 한 선명하고 알기 쉬운 제도를 만들어 달라. 부모가 정보수집을 해야 하고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야 하는 제도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입시제도 말이다.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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