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43)
모두들 바쁘다 하고, 바빠서 여유 없다 하니 그런 줄 알겠지만, 한가함은 바쁜 중에 오고 바쁨 속의 한가함을 볼 수 있어야 비로서 한가함의 진수를 보는 것이라 믿는다.
무엇때문에 우린 그리 바쁜가? 학생들은 시험 봐 좋은 성적 내려 바쁘고, 사업가는 돈 버느라 바쁘고, 관리들은 영전하기 위해 바쁘고, 부모는 자식때문에 바쁘고, 자식은 앞 날 때문에 바쁘지만(나를 지켜낸다는 것 - 핑차오후이 제36쪽) 자신으로 살려 그리 바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우리는 왜 이리도 바쁜가? 쓸데없는 일로 바쁘지는 않는가? 남이 해야할 일 대신하느라 바쁘지는 않는가? 남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바쁜 것은 아닌가?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손님 치른 후의 뒷정리를 마치고 원두막 높이 앉아 陶淵明(도연명)의 시를 읽노라니, 산 기운 지는 해 더욱 아름답고 나는 새 집 찾으니 이 참다운 삶의 의미 말할래야 이미 말을 잊는다. 아 삶이 이럴진데 나 또한 참 쓸데없는 일로 바쁘다 하며 살았구나. 이제 겉치장 뿐인 바쁨은 뒤로하고 돌아보며 살 때도 되었건만 무슨 미련 그리 많아 떨치지 못하는가? 속세를 벗어나 산림에 은거하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쁜 와중에도 마음이 돌아갈 곳을 찾으라 말하는 것이니(나를 지켜낸다는 것 - 핑차오후이 제37쪽) 마음 돌아 갈 곳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큰 축복임을 다시 느낀다.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욕실 코너 받침대와 헤어드라이어 거치대(드라이어는 왜 그리 큰 것을 샀는지. 머리 말릴 일도 별로 없구먼)인데, 별로 어렵진 않지만 벽면이 타일로 되어있어 타일에 피스 작업하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타일 피스 작업을 위해서는 먼저 타일에 전동 드릴로 구멍을 내고(플라스틱 피스 홀더에 맞도록 적당히) 그 구멍에 플라스틱 피스 홀더를 끼운 다음, 거기다 거치대 홀더를 피스로 박아 고정하면 된다. 드라이어 홀더는 먼저 벽에 홀더를 고정한 뒤 거치대를 홈에 맞춰 위에서 아래로 끼워 넣으면 되고, 코너 받침대는 코너 양쪽에 거치대를 고정하고 유리 받침대를 끼운 후 홀더 하단에 있는 나사로 고정하면 된다.
수평이 중요하므로 유성펜으로 위치를 먼저 표시하는 게 좋다. 전에 산막에서 쓰려고 샀다가 신병기에 밀려 빈방에 처박혀 있던 오디오(미니 컴포넌트)도 독서당으로 옮겨 재설치했다. 공간이 마땅치 않아 우선 바닥에 주저앉혔지만 곧 제자리 찾아 줄 거다. 좁은 공간이라 소리가 빵빵하다.
산막 독서당 선반 설치 작업도 했다. 좌측 상단 까맣게 보이는 것이 캔티레버식 철제 앵글인데, 이것을 벽면에 피스로 고정하고 여기에 선반을 끼게 되어 있어 별도 받침대가 필요 없다. 좁은 공간엔 딱이다. 재질도 예쁘다. 단 피스 고정 후 구멍에 끼워 넣기가 다소 어려운 단점이 있다. 어쨌든 완성해 놓고 보니 예쁘다.
새벽부터 난리를 쳤다. 세탁기가 있는 부엌방에서 얼마 전부터 물 새는 소리가 들려 차일피일했었는데,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오늘은 작심하고 수리공이 되기로 했다. 누수 위치를 겨우 확인했는데 작업공간이 협소해 마룻장을 뜯어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피스를 풀고 끌과 망치를 동원해 겨우 들어내 작업하는데, 나사 풀고 조이기가 만만치 않았다. 겨우 조립하고 수도를 틀어보니 또 다시 물 새는 소리가 난다. 한 군데 더 아래쪽에 누수가 있었다. 다시 이음 나사 풀고 와셔 잘 넣고 조립해 수도를 틀어보니 완벽하다. 좁은 공간에서 작업하는 것과 이음 나사를 풀고 조이는 일이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 사람 부르지 않고 해냈다. 이제 마룻장 원상 복구하고 세탁기 및 가구만 원위치시키면 작업 끝이다. “여보 어때?” 하고 곡우에게 좀 으스댔다. 으스댈 만하지 않나?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한다. 환경이 이렇게 만든다. 나는 이곳 오기 전엔 망치질도 제대로 못 했었는데, 지금은 웬만한 일 다 한다. 직접 다 할 수밖에 없다. 근데 이거 아시는지 모르겠다. 하고 나면 굉장히 뿌듯하다. 내가 뭐가 좀 된 것 같다. 사람이 좀 된 것 같다. 몸 좀 쓰고 사람 된 것 같은 기분. 참 안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사실이다.
산막에 있으면서 많이 느끼고 배운다. 휴식도, 독서도, 음악감상도 일하고 난 수고가 있어 더욱 달콤하고 감동이 아닌가 싶다. 잔디밭 풀 뽑기에 나선다. 할머니들 밭일할 때 쓰는 둥근 방석 하나, 면장갑에 호미 한 자루, 작업용 트레이에 접이식 의자 하나면 족하다. 일하다 쉬고, 쉬다 일하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책을 읽어도 부끄럽지 않다 느끼며 그렇게 하루를 보내야 삶이 좀 더 충일할 것 같다. 충일한 삶, 무언가에 몰입하는 삶, 부끄럽지 않은 삶, 그것이 바로 행복의 요체 아닌가 싶다.
캠핑용 석유 난로를 설치하고 주전자도 하나 올렸다. 어제의 찌뿌둥함이 씻은 듯 사라졌으니 이도 병이라면 큰 병이로구나. 따뜻한 이 밤! 오늘은 오랜만에 책 한번 제대로 읽어보련다. 많은 책 중 특별히 어느 책에 정착하지는 않을 거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바람처럼 물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읽을 거다. 바람 하나 있다면 책 읽다가 온 밤을 하야이 샐 그런 감동. 그런 울림 하나 얻었으면 한다.
(주)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