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아편전쟁, 의화단의 난(의화단운동) 등 중국 근현대사에서 유독 경자년에 최악의 혼란을 가져온 사건들이 일어났음을 상기하며, 경자년인 올해 중국에 또 악재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표현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중국 전문 칼럼니스트인 나카자와 가쓰지(中沢克二) 편집위원은 지난 15일자 기명 칼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후 중국 경제계에 번지고 있는 이런 암울한 전망을 소개했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혼란은 수습되고 있지만, 이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오래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칼럼에 따르면 중국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사안은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ㆍ일본 등 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떠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가능성이다. 나카자와 위원은 “중난하이(中南海ㆍ베이징 중심에 자리한 중국 수뇌부의 집무구역)는 지금 외국기업의 중국 철수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며 ‘외자 이탈’이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경제 재건을 노리는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진핑 방일연기 직후 아베 ‘U턴 독려’
요지는 중국에 생산공장을 둔 일본 기업들에 대한 ‘국내 U턴’ 촉구다. 일본 정부는 특히 고부가가치 산업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날 회의에는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經團連)의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회장 등 일본 경제계 중진들이 대거 참석했다.
아베 총리는 “중국 등에서 일본으로 제품 공급이 감소하면서 우리나라 서플라이 체인에 영향이 우려되고 있다”며 “한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제품 중 고부가가치 제품은 일본으로 생산거점을 옮기고, 그렇지 않은 제품은 한 국가에 의존하지 말고 동남아시아연합(ASEAN) 각국 등으로 생산거점을 다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 국가’는 다름 아닌 중국이다.
실제로 신종 코로나 사태 초기 중국 공장들이 대거 문을 닫으면서 자동차 부품 등의 조달이 어려워졌고, 일본 내에서 생산 차질이 잇따랐다.
이는 신종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기업들의 일본 회귀가 ▶수입 감소 ▶수출 증가 ▶고용ㆍ설비투자 증가 등으로 선순환할 경우 불황에서 보다 빨리 탈출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중국은 이런 일본의 ‘중국 철수 지원 프로젝트’가 중국 내 산업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칼럼은 전했다.
◇‘아메리카 퍼스트’ 가속화도 악재
특히 11월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중국 때리기에 골몰하는 모습이 중국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각각 세계 1위, 3위의 경제대국인 미국과 일본이 ‘중국 이탈’에 속도를 낼 경우 중국 경제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중국 당국은 미ㆍ일 양국이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중국에서 단번에 발을 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하면서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 8일 열린 정치국 상무위원회(중국 공산당 수뇌부 회의)에서 “엄중하고 복잡한 국제적인 감염과 세계 경제 정세에 직면하고 있다”며 “우리는 최악의 사태를 상정하는 자세(底線思維)로, 비교적 긴 기간에 걸쳐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지도부가 ‘장기전’을 직접 언급하면서 위기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신종 코로나 종식 이후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 때문에 급격한 외자 이탈을 막기 위한 여러 조치를 계획하고 있다.
중국 국내 경제가 망가지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면서 벌이고 있는 일대일로 구상 등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신종 코로나와 ‘경자년의 재앙’
2019년 연말부터 중국 내에선 ‘홍콩 민주화 시위’ ‘미ㆍ중 무역전쟁’ 등이 돌아오는 경자년의 또 다른 화근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소셜미디어(SNS)상에서 떠돌았다. 그런데 지금은 신종 코로나가 모든 이슈를 삼키며 더 큰 불씨가 되고 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