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조차 처음 본다는 표현, 청와대·여권의 '피해 호소인'

민주당 이해찬 대표. 임현동 기자

민주당 이해찬 대표. 임현동 기자

피해 호소인께서 겪으시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다시 한 번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해 호소인의 고통과 두려움을 헤아려 ‘피해 호소인’을 비난하는 2차 가해를 중단해줄 것을 부탁드린다”(청와대 문자메시지)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직원에 대한 2차 가해 차단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 (서울시 대변인)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서울시 등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고소한 피해자 A씨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여성계와 법조계에서 모두 “생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률상 ‘피해호소인’ 없다

‘피해호소인’이란 말은 소송에서 아예 쓰이지 않는다. 형사 사건을 주로 맡는 한 변호사는 “처음 들어본다”며 “고소를 하면 수사기관에서는 주로 ‘피해자’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법률적으로는 피해자가 고소를 하면 ‘고소인’이다. 고소를 당한 사람이 재판에 넘겨지면 그때부터 공소장에 ‘피해자’라고 적힌다. 설사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판결문에 피해자라고 적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도 판결문에 고소인 김지은씨를 ‘피해자’라고 적었다. 
 
다만 굳이 ‘기소’라는 사법 절차를 통해 입증되지 않더라도 통상 성폭력 피해를 밝힌 이들은 ‘피해자’로 일컫는 것이 일반적이라는게 법조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피해여성을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 초대한 스마트폰 화면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피해여성을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 초대한 스마트폰 화면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떳떳한 ‘고소’ 왜 ‘호소’라”

박 전 시장이 사망한만큼 사안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기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굳이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를 꺼내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그에 따른 비판도 높다.

 
이에 대해 미투 사건을 주로 대리했던 한 변호사는 “‘무죄추정의 원칙’상 피고소인이 사망한 상황에서는 사실로 확정해줄 수 없다는 의도가 엿보인다”며 “다만 그 말 자체가 법적인 용어도 아니거니와 피해자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존중하는 쪽에서 쓰는 단어인지 아니면 ‘너는 주장하지만, 나는 믿을 수 없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짚었다.  
   
한 여성학자는 “이제껏 ‘피해호소인’이란 단어를 써온 일을 보지 못했다. 그 표리부동함에 놀란다”며 “사안이 ‘무고’라면 그 때부터는 무고의 ‘가해자’로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여성계 인사도 “떳떳한 고소를 왜 ‘호소’로 만드는가”라고 되물으면서 “‘고소인’이라는 말조차 고소를 하지 않은 피해자는 아우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중권 “얄팍한 잔머리” 野 “우아한 2차가해”

안희정 전 충남지사(왼쪽), 오거돈 전 부산시장(가운데)에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투 논란에 휩싸였다. 박 시장은 최근 자신의 전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뒤 숨진채 발견됐다. [연합뉴스·뉴스1]

안희정 전 충남지사(왼쪽), 오거돈 전 부산시장(가운데)에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투 논란에 휩싸였다. 박 시장은 최근 자신의 전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뒤 숨진채 발견됐다. [연합뉴스·뉴스1]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그 분 이름 공개하라”면서 “사회에서 매장시켜야 한다. 얄팍한 잔머리로 국민을 속이려 한 것이며 아주 저질이다”라고 분노했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오거돈 전 시장 때도, 안희정 전 지사 성추행 사건 때도 ‘피해자’라고 칭하며 피해 여성에 사과했던 민주당”이라면서 “의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우아한 2차 가해’”라고 꼬집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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