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폭등이 어떻게 박근혜 탓이냐" 조목조목 반박한 유일호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중앙포토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중앙포토

 
부동산값 폭등으로 민심이 들썩이자 여권에선 ‘이명박ㆍ박근혜 카드’를 꺼냈다. 집값 폭등이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 보수 정권 탓이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3일 “폭등 원인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간 누적된 부동산 부양 정책 때문”이라고 했고, 4일 국회 본회의에서도 여당 의원들이 비슷한 논리를 폈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지낸 유일호 전 부총리를 6일 만나 ‘박근혜 책임론’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그는 현오석ㆍ최경환 부총리의 뒤를 이어 2016년 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박근혜 3기 경제팀’을 지휘했다. 유 전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가 지금이라도 ‘정치 처방’보다는, ‘정책 처방’으로 위기를 돌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 부동산값 폭등은 박근혜 때문”이라는데.
(한숨을 쉰 뒤) 부동산 정책이 쉽지 않은 숙제라는 건 알지만, 그런 주장엔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부동산 3법’이 통과된 게 6년 전이다. 당시엔 부동산 거래가 실종돼 ‘활성화’가 관건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거래 활성화를 못 시키느냐”는 원성이 나왔다. 통상 연간 부동산 거래가 100만 건이면 괜찮다고 보는데, 당시 70만건 수준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거래를 100만건 수준으로 활성화했다. 그땐 집값 상승률도 높지 않았다. 데이터가 입증한다.
 
정책 시차가 있을 수 있지 않나
2014년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가 집값 폭등의 ‘직격탄’이었다면, 다음 해인 2015년까지는 집값 상승이 있어야 하지 않나. LTVㆍDTI 완화 같은 정책은 시장 반응이 오래 걸리지 않는데, 당시 상승효과가 없었다. 그랬던 정책이 뜬금없이, 하필 문 정부 출범 뒤에 폭탄으로 돌아왔다는 건가.
 
보수 정권 때 ‘강남 폭등’이 시작됐다고도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강남 불패’라는 말이 있었고, 김대중 정부 때도 강남 집값은 늘 이슈였다. 심지어 김영삼ㆍ노태우 정부 때도 거론되던 문제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 강남 집값을 올려 애꿎은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줬다는 식의 주장인데, 난센스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2017년 2월 9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2017년 2월 9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부동산값 폭등의 주범이 이명박·박근혜 정부라는 주장이 처음 나온 건 아니다. 2018년 집값이 크게 오르자 정부와 민주당은 “2014년 금리 인하로 시중에 풀린 600조원이 부동산으로 흘러갔다”고 주장했다.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4일 “보수 정부에서 종부세를 무력화했고, 당시 서울에 공급된 23만호 주택 중 77%를 다주택자가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투기적 공급’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종부세 무력화가 폭등 원인이라고도 하는데.
‘종부세 무력화’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박근혜 정부 당시 야당(현 여당)이 종부세 강화를 당론으로 밀어붙이고, 정부ㆍ여당이 이를 무산시키는 식의 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과정은 없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 초기 종부세를 완화한 것은 사실이고 여야 모두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민주당 후보 14명이 “1가구 1주택자 종부세 완화” 공약을 내놓지 않았나. 이처럼 복잡한 사안을 ‘무력화’ 같은 쉬운 말로 뭉뚱그려 공세 수단으로 삼는 건 옳지 않다.
 
신규 주택의 77%를 다주택자가 사들였다는 주장은.
참 이상한 데이터다. 마치 박근혜 정부에서 공터에 23만호를 세웠더니, 다주택자가 77%를 쓸어간 것처럼 들리지 않나. 유주택자는 분양을 받기도 힘든데 말이다. 아마도 재건축, 재개발 공급까지 포함한 엉뚱한 데이터로 보인다. 낡은 아파트에서 10년간 살다가 재건축이 됐다고 치자. 여당 주장대로라면 집주인이 새 공급을 받았으니 다주택자 투기꾼이란 말인가 
 
朴 정부의 저금리 정책이 폭등을 불렀다고도 한다
일차원적인 주장이다. ‘그럼 문재인 정부는 금리를 올려라’라는 한마디로 반박이 가능하다. 금리 인하는 불황 극복을 위해 전 세계가 동의한 전략이었다. 저금리로 유동성이 늘었다면, 이를 경기 활성화 등 생산적인 쪽으로 유도하는 게 정부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부동산에 돈이 과도하게 쏠린다면, 주택 공급을 늘리고 규제 완화를 하는 등 활로를 찾는 게 바로 정책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안정화를 위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 당정협의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 안정화를 위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 당정협의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유 전 부총리는 인터뷰 도중 “박근혜 정부 부동산 정책이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다. 저도 아쉬움이 없지 않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직 문 정부에게도 시간이 있다. 위기 탈출을 궁리해야 할 시점에 ‘박근혜 책임론’을 들고나온 게 안타까운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을 일차원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했다.
강남을 예로 들겠다. 강남 집값을 단순히 ‘투기 세력 때려잡자’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강남 집값이 단순히 투기 수요 때문에 오르는 게 아니라서다. 주변 환경, 학군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이번 정부에선 투기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정작 자사고ㆍ외고ㆍ국제고 폐지를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강남 학군’의 가치가 급상승해버렸고, 집값 상승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정부가 4일 신규 택지 공급 대책을 내놨다
공급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추진 동력을 얻어야 하는데, 벌써 민주당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내부 반대를 진정시키는 게 쉽지 않겠지만 방법이 없진 않을 것이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활로를 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