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판 '심판의 날 항공기'라 불리는 Il-80 공중 지휘통제기. [위키미디어]](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2/08/f0423021-1ad3-41b6-af64-7a0fc539c133.jpg)
러시아판 '심판의 날 항공기'라 불리는 Il-80 공중 지휘통제기. [위키미디어]
7일(현지시간) 러시아의 국영 매체인 리아 노보스티에 따르면 신원을 알 수 없는 일당이 최근 정비 중이던 Il(일루신)-80 맥스돔의 화물칸 해치를 열고 들어간 뒤 통신 장비를 훔쳐갔다. 절도 사건이 일어난 곳은 아조프 해 인근의 로스토프 지방의 타간로크 공항이다. 이 공항엔 러시아의 항공기 제조업체인 베리에프의 정비 공장이 들어서 있다.
Il-80은 랜딩기어의 윤활유를 가는 등 정기 점검ㆍ보수를 끝낸 뒤 모든 출입구와 해치, 비상구를 봉인한 상태였다. 러시아 내무부 대변인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장비 도난 사실을 시인했다. 예비역 대령인 안드레인 코쉬킨은 러시아 매체인 URA. RU와의 인터뷰에서 “내부자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 언론은 사건이 일어난 날짜나 어떤 통신 장비가 없어졌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Il-80은 러시아의 핵심 전략자산으로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뜻이다.
이 항공기는 핵전쟁이 벌어지면 러시아 대통령을 태운 뒤 공중에서 군을 지휘할 수 있는 공중 지휘통제기다. 러시아 대통령은 기내에서 언제라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을 발사하거나, 핵폭탄을 실은 전략폭격기에 출격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단순 절도가 아닌 외국 정보기관의 공작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Il-80은 구소련 때인 1987년 첫 비행을 했다. 민간 여객기인 Il-86을 개조했다. 미국이 핵전쟁을 대비해 1973년 보잉 747-200을 개조한 E-4B를 선보이자 따라 만들었다. E-4B의 별명은 ‘심판의 날 항공기’다.
Il=80은 암호 통신이 가능한 위성 안테나가 기수 윗부분에 툭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또 조종석을 제외하고는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없다. 핵폭발 때 나오는 섬광으로부터 탑승객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다만 조종석에선 필요할 때 창문 차폐막을 내릴 수 있다.
러시아 공군은 모스크바 근처 차칼로프스키 기지에 4대의 Il-80를 배치해놓고 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