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아웃사이드' 위기에…CEO 전격 교체한 반도체 왕국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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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아웃사이드'의 위기에 직면한 반도체 기업 인텔이 초강수를 뒀다. 최고경영자(CEO)를 갈아치웠다. 밥 스완 CEO가 다음달 15일 사임하고, 클라우드 컴퓨팅업체 VM웨어의 팻 겔싱어 CEO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낙점했다고 13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사실상 문책성 경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완의 재임 기간은 인텔 CEO 중 가장 짧다”며 “세계 최고라는 반도체 업체의 지위를 잃은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왕국’ 인텔 역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반도체 왕국’ 인텔 역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때 인텔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으로 불렸다. 지구 위의 거의 모든 전자제품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했던 회사였다. '인텔 인사이드'라는 광고 카피는 세상을 움직이는 인텔의 힘을 보여줬다. 하지만 시가총액 기준으로 미국 1위 반도체 기업의 자리를 엔비디아에 내줬다.

 
인텔의 사세가 본격적으로 기운 건 2년 전부터다. 주력인 PC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의 거물 고객이 잇따라 ‘탈(脫) 인텔’ 선언을 하고 있어서다. 클라우드 서비스 최강자인 아마존은 2018년 자체 CPU를 개발해 쓰고 있다. ‘윈텔(윈도OS+인텔 CPU)'동맹을 이뤘던 마이크로소프트(MS)도 서버용은 물론 PC 제품 ‘서피스’에 자체 반도체를 사용할 계획이다. 애플도 ‘맥북’에 자체 CPU ‘M1’을 탑재하기로 했다.
밥 스완 인텔 현 CEO. 2월 15일까지가 임기다. [로이터=연합뉴스]

밥 스완 인텔 현 CEO. 2월 15일까지가 임기다. [로이터=연합뉴스]

인텔의 위기는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 있다. 아마존·MS·애플이 자체 CPU를 만들 수 있게 된 건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암(ARM) 덕분이다. ARM은 설계 라이선스를 팔아 이익을 내는 회사다. 그동안은 애플과 퀄컴, 삼성전자 등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생산 업체와 거래했다. 
 
이젠 인텔의 아성인 ‘서버와 PC’에서도 통하는 기술력을 갖게 됐다. 주요 IT기업 입장에서는 인텔 제품에 의존하기보다 ARM의 설계 라이선스를 이용해 자체 CPU를 만드는 게 나은 상황이 된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AP=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는 “ARM의 저전력 기술이 업계를 매료시켰다”며 “인텔의 매출 손실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텔과 경쟁 관계인 엔비디아가 지난해 9월 ARM을 인수했다. 
 
반도체 품질에도 인텔의 입지는 위태롭다. 인텔은 최근 몇 년간 14나노미터(㎚·10억 분의 1m) 칩에서 10나노 칩으로 공정을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미 7나노를 넘어 5나노 수준에 도달한 대만 TSMC나 한국 삼성전자에 크게 뒤진다.
리사 수 AMD CEO가 13일 열린 CES 2021 행사에서 발표하고 있다.[CES 2021 유튜브 캡처]

리사 수 AMD CEO가 13일 열린 CES 2021 행사에서 발표하고 있다.[CES 2021 유튜브 캡처]

최근 반도체 산업은 설계기업(팹리스)과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로 분화하고 있다. 초미세공정 등 반도체 기술이 진화하며 그에 따른 생산 과정 역시 고도화했다. 인텔처럼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MD)에는 불리한 상황이다.  IT 조사업체인 패스마크소프트웨어에 따르면 인텔은 올 1분기 데스크톱 CPU 시장에서 경쟁사인 AMD에도 밀릴 것으로 예상된다. 
AMD에 데스크톱 CPU 시장 1위 뺏긴 인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AMD에 데스크톱 CPU 시장 1위 뺏긴 인텔.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행동주의 펀드 서드포인트가 지난해 12월 “반도체 설계에만 집중하라”고 인텔에 촉구하는 서한을 보낼 정도다.
 
인텔이 겔싱어를 새로운 선장으로 택한 것은 기술적 한계를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겔싱어는 1979년 인텔에 입사해 고든 무어와 앤디 그로브, 로버트 노이스 등 인텔 창립 삼인방 아래서 30여년 간 기술 개발을 이끌고 최고기술책임자(CTO)까지 오른 인물이다. WSJ은 “재무 담당자 출신이던 현 CEO보다 기술 엔지니어 출신인 겔싱어가 인텔의 현안을 해결하는데 더 적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인텔의 향후 행보는 한국 반도체 업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인텔이 현재 TSMC와 삼성전자에 일부 생산을 맡기는 걸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시장에선 오는 21일 예정된 인텔의 2020년 4분기 실적발표와 컨퍼런스콜에서 이런  계획을 발표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인텔의 외주생산은 제품 경쟁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라며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업계에는 큰 수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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