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류 ‘창의적 해법’이 구급차 제공? 이란 “한국 제안 거부”

한국 케미호 선원 석방을 위해 이란을 방문했던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최 차관은 빈손 귀국이라는 평가에 대해 “조기 석방이라는 프레임에서 본다면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란 측에 요구할 것은 확실히 요구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국 케미호 선원 석방을 위해 이란을 방문했던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최 차관은 빈손 귀국이라는 평가에 대해 “조기 석방이라는 프레임에서 본다면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란 측에 요구할 것은 확실히 요구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국 유조선 억류 문제를 풀기 위해 이란을 방문했던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을 단장으로 한 정부 대표단이 14일 빈손으로 귀국했다.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으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이 ‘창의적으로’ 해결하겠다며 의욕을 냈지만 오히려 이란측이 최 차관 귀국 직후 협상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면서 뒤끝만 남게 됐다.
 
마무드 바에지 이란 대통령 비서실장은 13일(현지시간) 정부 홈페이지에 “한국에 동결된 이란 중앙은행의 자금으로 구급차를 구매해 보내겠다는 한국 정부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바에지 실장은 “우리를 겨냥한 (미국의) 경제 전쟁과 압박에 맞서 3년간 이 나라를 운영했다”면서 “우리는 구급차 몇 대가 필요한 게 아니라 한국에 동결된 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 대표단은 돌아가 이란의 동결자금을 해제하는 (미국의) 허가를 받아오겠다고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통상 고위급 외교회담 내용은 양측이 사전에 협의해 결과를 발표한다. 특히, 상대방이 불편한 내용을 공개할 경우 최소한의 양해가 있어야만 발표하는 게 외교 관례다. 그런데 이란은 이를 무시하고 한국의 제안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이란의 이같은 외교 결례에도 한국으로선 강하게 대응할 수 없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다양한 방안이 협의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아니라) 이란 측이 구급차 도입을 희망했다”며 “최 차관이 (이란에) 가서 새삼스럽게 제안한 것처럼 보도됐는데, 이는 사실과 많이 다르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유감을 표명하지 않은 채 “사실과 다르다”는 수준에서 대응한 것이다.
 
마무드 바에지 이란 대통령 비서실장이 13일 기자들과 만나 동결자금 대신 구급차를 구매해 제공하겠다는 한국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란 정부 홈페이지 캡처]

마무드 바에지 이란 대통령 비서실장이 13일 기자들과 만나 동결자금 대신 구급차를 구매해 제공하겠다는 한국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란 정부 홈페이지 캡처]

정부의 곤란한 입장은 최 차관이 이란을 방문한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측면이 있다. 이번 억류 사태의 뿌리가 미국·이란 간 갈등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으로선 운신의 폭이 거의 없어서다.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했다. 이란 핵 합의(JCPOA)를 파기한 트럼프 행정부가 막을 내리고 재협상에 무게를 둔 바이든 행정부가 20일(현지시간) 출범한 후 미국과 협의를 거쳐 움직이는 게 현실적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외교가 안팎에서 이번 방문을 두고 “그동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강조해온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결과적으로 이란은 정부 대표단의 방문을 수용해 자신들의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고 한국을 압박하는 계기로 활용했다. 또, 이란 측의 이날 공개내용을 보면 정부는 이란 동결자금을 풀기 위한 ‘미국 설득’이라는 숙제만 재확인했다.
 
이와 관련, 최 차관도 이란측에 “일단 사태를 파악하러 온 것이고, 사태를 파악했으니, 충분한 답을 갖고 만나는 자리를 다시 만들겠다”는 취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연장선상에서 협상의 파트너였던 압바스아락치 외교차관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한 전직 고위외교관은 “이란은 자금 동결 해제를 원하는 반면 우리는 선박 억류 해제를 요청하기 위해 이란을 방문했다는 건 협상 의제조차 조율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선박 나포와 같은 갈등 국면에서 고위급 방문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방문을 결정했으면 성과를 내야 했는데두 가지 모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란에 억류된 선원의 석방을 위해 교섭하고 14일 귀국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방문에서 조기 석방이라는 결과물을 도출 못 했지만, 한·이란 양국은 그 결과를 위한 커다란 걸음을 함께 내디뎠다”며 “선박과 선원에 대한 이란 정부의 조치가 신속히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정진우·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