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쇄신을 이끌 잔 다르크인가, 비겁한 배신자인가. 반(反) 도널드 트럼프 진영의 대표 격 행보를 보이는 리즈 체니(55) 하원 의원총회 의장에게 닥친 질문이다. 최근 공화당 내 친 트럼프 세력과 반대파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당 하원 서열 3위 그가 지도부에서 축출될 위기에 처했다. 외신들은 오는 12일 그의 당직 박탈을 결정할 투표가 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거세지는 퇴진 압박에 리즈 체니가 선택한 전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당내 세력을 향해 쓴소리를 한 것이다. 그는 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트럼프를 수용하는 것이 언뜻 좋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나라와 당에 피해를 줄 것”이라며 “트럼프에 대한 숭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공화당은 전환기에 접어 들었고, 헌법에 대한 진실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하원 넘버원인 케빈 매카시(56) 원내대표를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지난 1월 의사당 폭동 당시 트럼프에게 책임을 물었던 그가, 이제는 말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매카시가 “체니에게 질렸고 신뢰를 잃었다”며 “우리가 (내년 중간선거에서) 다수당이 되려면 (친 트럼프 세력과도) 하나가 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한 것을 역비판한 것이다.
리즈 체니 의원은 의사당 폭동 뒤 주요 국면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트럼프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10명의 하원의원 중 한 명이었다. 지난 2월엔 미국 내 최대 보수 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트럼프의 연설 여부에 대해 “그가 당이나 국가에 대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최근 상황이 격해진 건 지난 3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을 “엄청난 사기극(Big Lie)”라고 주장하면서다. 체니 의원은 곧바로 “우린 대선을 도둑맞지 않았다”며 “오히려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이 법치를 해치고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그동안 체니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친 트럼프 세력들에게 도화선이 됐다. 매카시에 이어 공화당 하원 2인자인 스티브 스컬리스 원내총무도 체니 축출안에 가세했다. 대표적인 ‘트럼프 충성파’로 꼽히는 엘리스 스터파닉(37)을 내세운 것이다. 스컬리스는 5일(현지시간) “스터파닉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급진적인 사회주의와 맞서 싸우고 내년 하원 탈환에 집중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고 치켜세웠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가세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비판한 체니를 “전쟁광인 바보(warmongering fool)”라고 조롱하며, 스터파닉에 대해 “아주 우월한 선택”이라고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대표적인 정통 네오콘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이기도 한 그의 운명은 12일로 예정된 비공개 투표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승패는 결국 정치 기지개를 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내 입지에 따라 갈릴 전망이지만, 체니가 자리를 지키긴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정치 전문매체 더힐은 “공화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포용하는 것은 꽤 위험이 따르지만, 트럼프 지지 세력을 제외하고서는 (내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