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최용수, '불사조'로 진화 중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이 지난해 12월 심장 수술 받은 사실을 처음 털어놨다. 김경록 기자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이 지난해 12월 심장 수술 받은 사실을 처음 털어놨다. 김경록 기자

최용수(50) 프로축구 FC서울 전 감독은 지도자로서도 스타였다. 2012년 사령탑에 오른 그는 같은 해 리그 우승컵을 들었다. 이듬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15년엔 축구협회(FA)컵 우승을 일궜다. 2016년 중국 장쑤 쑤닝으로 팀을 옮겼다. 그는 후임자인 황선홍(53)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자, 2018년 10월 다시 서울 극적으로 1부 잔류를 성공시켰다. 이어 2019시즌에는 팀을 리그 3위로 끌어올렸다. 별명인 독수리처럼 펄펄 날던 그에게 지난해 시련이 닥쳤다. 팀은 시즌 초반 11위까지 떨어졌고, 그는 7월에 스스로 물러났다.
 
최 전 감독을 16일 서울 목동에서 만났다. 서울 감독직을 내려놓은 지 1년 만이다. 그는 최근까지 외부 노출을 자제했다. 최 전 감독은 "프로 감독을 떠난 뒤 첫 인터뷰라서 낯설다. 지난 1년간 '큰 일'을 여러 차례 겪었다.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최 전 감독은 지난해 12월 심장 수술 받은 사실을 처음 털어놨다. 부정맥 때문이다. 5시간 반에 걸친 큰 수술이었다. 최 전 감독은 "몇 년 전부터 가슴 통증이 있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지난해 말 호흡이 너무 불안정해서 응급실에 갔더니,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축구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바람에 몸이 곪아가는 것을 몰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두르지 않았다면 자칫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현역 때도 수술 한 번 안 해서 '내 몸은 강철'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신했다. 수술 사실을 알리지 않아 2002 한·일 월드컵 멤버도 최근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최 전 감독은 지난해 서울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경록 기자

최 전 감독은 지난해 서울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경록 기자

수술 후 회복 중이던 최 전 감독은 비보를 전해 들었다. 동갑내기 유상철(50)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별세 소식이다. 유 전 감독은 췌장암 투병 중 7일 세상을 떠났다. 최 전 감독은 "상철이와는 더 각별했다. 올림픽 대표팀 시절 쉬는 날이면 둘이서 밥 먹고 놀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추억했다. 이어 "최고의 재능과 열정 그리고 투혼을 갖춘 친구이자, 한국 축구의 큰 별이 졌다. 이젠 하늘 나라에서 맘 편하게 축구화 끈을 메고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쉬는 동안에도 서울을 잊지 않았다. 청춘을 바친 팀이라서다. 그는 1994년 안양 LG(서울 전신)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일본 J리그에서 뛴 기간을 빼면 2006년 은퇴할 때까지 서울 한 팀 유니폼을 입었다. 1994년엔 신인상, 2000년엔 리그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를 차지했다. 별명 '독수리'도 이때 생겼다. 서울은 최 전 감독이 떠난 뒤에도 반등하지 못했다. 감독 대행을 포함해 사령탑이 네 차례 더 바뀌었다. 지난 시즌은 9위, 올 시즌 현재는 10위다. 
 
최 전 감독은 쉬면서도 FC서울을 잊지 않았다. 서울은 그가 청춘을 바친 팀이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최 전 감독은 쉬면서도 FC서울을 잊지 않았다. 서울은 그가 청춘을 바친 팀이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최 전 감독은 "무엇보다 감독과 구단의 호흡이 중요하다. 선수 기용, 육성, 영입 등은 축구 전문가인 감독에게 맡겨야 하는데, 구단의 일방적인 방침이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엔 구단 수뇌부와 꾸준히 소통했다. 감독과 수뇌부의 가교 역할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건 서울 한 팀에서 청춘을 바쳤고, 감독으로서 성과를 내봐서 잘 안다"고 꼬집었다. 이어 "강팀이었던 서울이 평범한 팀으로 전락한 책임은 감독에게만 지운다. 구단도 변화와 혁신을 해야 한다. 당장 눈앞 결과와 이익도 좋지만, 투자와 신뢰도 보내야 한다. 그래야 서울이 옛 영광을 되찾는다"고 쓴소리했다.
 
최 전 감독은 최근 방송을 시작했다. 후배 안정환의 권유가 계기다. 지난달 함께 예능 프로 '안 싸우면 다행이야'에 출연했는데, 9.1%(닐슨, 수도권 가구)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드라마 포함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툭툭 던지는 농담이 화제였다. 16일부터는 여자 연예인 축구 팀을 훈련시켜 대회에 출전하는 예능 프로 '골때리는 그녀들'에선 '모델 팀(구척장신)'의 감독을 맡았다. 황선홍, 이천수, 김병지, 이영표 등 2002 멤버가 경쟁 팀 사령탑이다. 
 
최 전 감독은 최근 방송을 시작했다. 사진은 최 감독이 모델 팀 감독을 맡아 대회에 출전하는 예능 프로 '골 때리는 그녀들' 촬영 현장. [사진 SBS]

최 전 감독은 최근 방송을 시작했다. 사진은 최 감독이 모델 팀 감독을 맡아 대회에 출전하는 예능 프로 '골 때리는 그녀들' 촬영 현장. [사진 SBS]

그는 "방송은 그라운드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기 전 숨고르기다"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그는 "방송은 그라운드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기 전 숨고르기다"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최 전 감독은 "항상 상위 1% 엘리트만 지도하다, 난생 처음 일반인을 가르치면서 지도자 관점이 달라졌다. 칭찬, 격려 등 부드러운 접근이 강한 카리스마 만큼이나 동기부여를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승부의 세계만 있다보니, 잊고 있었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도자 인생에서 예선 탈락을 해본 적 없고, 병지 형, 영표, 천수 등은 프로 감독 경험 없는 경쟁자들이 있어서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본격 방송인이 되는 거냐'고 물었다. 최 전 감독은 "다작 속에 대작이 나온다"며 농담하면서도 "방송은 그라운드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사르기 전 숨고르기다. 감독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가 올 것이다. 다신 쓰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해 더 높이 날겠다"고 말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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