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2월 5일 서해상에서 표류해 남하한 북한 주민이 타고 왔던 5t급 소형 목선. 당시 북한 주민 31명이 어선을 타고 연평도 해상으로 남하했다가 이 중 4명이 귀순하고 27명은 북한으로 돌아갔다. 연합뉴스
탈북자도, 비전향 장기수도 아냐
앞서 지난 3월 7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어업 활동을 하던 북한 주민 2명은 해류를 따라 남측으로 넘어왔고, 군이 이들을 서해 어청도 부근에서 발견했다. 이후 군과 정보 당국의 합동신문조사 등에서 주민들은 “북측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일관되게 밝혀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유엔사의 협조를 얻어 북측에 이런 사실을 통지했지만, 북한은 7일 현재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이날은 북한 주민들이 남측에 넘어온 지 62일째 되는 날이다. 북한으로 귀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주민이 남측에 체류하는 최장기 사례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해상에서 표류해 우발적으로 남측에 넘어왔던 북한 주민들은 평균 6~7일 안에 해상·육로(판문점)로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2017년 5월~2022년 5월) 때는 평균 3.3일 만에 귀환했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진 통일부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11월 2일 동해로 들어온 어민 2명은 5일 만에 돌아갔다. 당시 선상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신병을 북측에 넘기면서 강제 북송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현재 체류 중인 북한 주민들은 법적 지위도 분명치 않다. 현행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은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려는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의 주민’(제1조)을 지원 대상으로 규정한다. 한국에 정착 의사가 없는 경우 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 이들은 고의로 월남한 게 아닌 만큼 ‘비전향 장기수’ 또는 양심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상 간첩 행위의 목적 수행(제4조)을 했다거나 잠입·탈출(6조) 사범이라고 볼 수도 없어서다.
정부 예산으로 숙식…장기화 시 인권 침해 소지
현재 북한 주민 2명은 정부가 관리하는 수도권 모처의 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체류 초반엔 남측에서 제공하는 식사에 거부감을 보였고, 남한 물로 씻는 것도 완강히 거부했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강하고, 시간이 흐를 수록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 주민들이 이런 불안 증세를 보이는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북한 당국이 남측을 ‘적대 국가’로 규정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외국이나 마찬가지인 남측 체류 기간이 길어질 수록 정신적 고통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이대로 계속 답이 없을 경우 정부가 공개 성명 등을 통해 북한에 신병 인도를 요청하는 방안을 고심하는 배경이다.
김정은 남북 단절조치 여파 가능성

조선중앙TV는 9일, 전날 밤 열린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녹화중계했다. 사진은 열병식 본행사에서 딸 김주애가 아버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얼굴을 만지자 흡족해 하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무응답이 두 달을 넘어가면서 북한이 자국민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는 기류다. 한 정부 소식통은 “북한의 이전 행태에 비춰보더라도 돌아가겠다는 주민을 안 받는 건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폐쇄적인 북한 체제 특성을 고려했을 때 남측에 오래 머문 것을 이유로 “남측의 문화나 정부의 회유에 오염됐을 수 있다”며 신병 인도를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북한은 코로나19 기간에도 군남댐을 통해 북측 주민의 시신이 떠내려왔을 때도 이를 인수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이런 경우 정부가 내부 규정에 따라 무연고자로 시신을 처리해왔다.
무엇보다 이번 사례는 그간 북한 주민들에게 어버이상과 애민지도자상을 강조해왔던 김정은의 이율배반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란 지적이다.
이와 관련,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으로서는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으로 남측과 완전 단절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남측과 접촉을 해야 하는 상황이 처음으로 생긴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응 매뉴얼을 먼저 마련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