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에 손, 건방" 女정치인 몰매···고정관념 깬 '등 파진 옷'[양성희의 시시각각]

지난 16일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타투 합법화 법안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참석한 정의당 류호정 의원. 등 파진 드레스 차림에 등에는 여러 장의 꽃무늬 타투 스티커를 붙였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타투 합법화 법안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참석한 정의당 류호정 의원. 등 파진 드레스 차림에 등에는 여러 장의 꽃무늬 타투 스티커를 붙였다. [연합뉴스]

정치인의 옷 하면 황산성 전 환경처 장관이 떠오른다. 1993년 바지 정장 차림으로 국회 업무 보고에 나섰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여성 정치인은 치마 정장이 불문율이던 시대였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고, “여자가 바지 차림에 손까지 넣다니 건방지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때문은 아니겠지만, 장관은 한 달 뒤 경질됐다. 96년 바지 정장을 입고 국회에 입성한 이미경 통합민주당 의원은 ‘여성 의원 바지 입기 운동’을 벌였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얘기다. 2012년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은 보라색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차림으로 등원했다가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짧은 스커트라 예의, 품위 논란에 성희롱성 발언이 더해졌다.
보수성이 강한 정치인 의상 논란은 주로 여성에게 집중되지만 가끔은 남성도 있다. 2003년 유시민 국민개혁정당 의원의 ‘백바지 사건’이다. 노타이에 재킷, 흰색 면바지의 캐주얼한 차림으로 국회에 처음 출석한 그에게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항의와 야유가 쏟아졌다. 유 의원은 다음 날 정장 차림으로 등원해서야 의원 선서를 할 수 있었다.
최근 정치인의 의상 하면 정의당 류호정 의원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면서 분홍색 계열의 미니 원피스를 입었다. 5060 남성으로 상징되는 국회에 20대 여성의 일상복으로 균열을 가져오는 일대 파격이었다. 여전히 낯설어하는 반응이 있지만, 청년 여성의 대변자다운 옷차림이란 호평도 적잖았다. 이후에도 류 의원은 청바지 등 일상복 차림을 자주 선보였다.
류 의원이 지난주 또 한 번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타투업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장에 등이 깊게 파인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노출된 등에는 보라색 꽃무늬 타투(문신) 스티커를 여러 장 붙였다. 타투업법은 젊은 층의 문화로 자리 잡았으나 법망 미비로 불법을 양산하는 타투 합법화안으로, 류 의원이 발의했다.
반응은 엇갈렸다. 본회의장도 아니고 법안 알리기 퍼포먼스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과 함께 과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가한 의제다" "보여주기다"란 비판에 더해 한 친문 논객은 "이게 청년 정치의 미래인가"라며 비꼬았다. 그러나 타투 합법화 같은 생활정치가 기성 정치인과 다른 젊은 정치인의 의제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타투가 몸의 미학 혹은 신체 표현이라는 점에서 등 파진 드레스와의 매치가 이상할 것도 없다. 한 인터뷰에서 류 의원은 "타투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방법이라 생각했다"며 "지난 국정감사 때는 노동자 김용균씨의 옷을 입었다. 제가 대변해야 하는 사람을 상징하는 옷을 입어 뉴스가 되면 저는 언제든지 또 입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보수 혁신의 상징이 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백팩을 메고 관용차 대신 지하철과 따릉이로 출근한다. 내용이 중요하다며 보여주기 쇼라고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 난 사람도 있지만, 30대 당 대표의 보여주기가 주는 신선한 충격이 더 크다. 꼭 한 번 보고 싶던 모습이라 반갑다. 류 의원도 마찬가지다. 여성 정치인의 옷 입기라는 정형을 깨는 보여주기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고정관념을 깨는 '남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달라는 정치적 메시지가 읽힌다.  
 정치인의 패션은 하나의 정치적 언어다. 종종 권위와 동의어로 인식되는 품위의 내용도, 복장의 TPO(시간ㆍ장소ㆍ상황)도 세월 따라 변한다. 옷과 스타일이 곧 본질(내용)은 아닐 수 있지만, 스타일의 변화로부터 본질의 변화가 시작되기도 한다. 스타일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젊은 정치인들에게 더 많은 파격을, 파격적 스타일을 허하라. 룰 브레이커가 돼 경직된 정치판에 신선한 자극과 변화를 이끈다면 보여주기 쇼도 환영이다. 그걸 젊은 정치인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