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가 만든 기이한 일…주담대 금리, 은행보다 2금융이 싸다

직장인 조모(38)씨는 지난달 경기도 남양주시의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며 새마을금고에서 잔금 대출을 받았다. 시중은행에서 받을 수도 있었지만 새마을금고의 대출 한도나 금리 등의 조건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중은행은 연 4%대 금리를 제시했는데 새마을금고가 연 3%대 금리로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 놀랐다”며 “정부의 대출규제로 잔금 대출을 못 받을까봐 걱정하다가 그나마 좋은 조건으로 대출받을 수 있어 입주자 상당수가 반기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10월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평균 금리가 3%대 중반 가까이, 4%대 중반까지 각각 오른 가운데 28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입구에 주택담보대출, 개인신용대출 등 대출 상품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늇,

은행권의 10월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평균 금리가 3%대 중반 가까이, 4%대 중반까지 각각 오른 가운데 28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입구에 주택담보대출, 개인신용대출 등 대출 상품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늇,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로 10년 만에 상호금융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시중은행보다 낮아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상호금융의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3.22%로 은행의 주담대 평균 금리(3.26%)보다 낮았다. 은행과 상호금융의 주담대 금리 역전은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2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은행보다 낮아진 상호금융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은행보다 낮아진 상호금융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은행과 상호금융의 신용대출 금리 역전 현상도 더 확대됐다. 한은에 따르면 10월 상호금융의 신용대출 금리는 연 4%로 은행(연4.62%)보다 0.62%포인트 낮다. 상호금융과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 차이는 지난 2월 처음 금리 역전현상이 나타난 뒤 계속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상호금융(연 3.84%)과 은행(연 4.15%)의 금리 차는 0.31%포인트였다.  

은행과 상호금융의 금리 역전은 대표적인 시장 왜곡 현상으로 꼽힌다. 상호금융 등 2금융권은 대출 자금 조달 비용이 비싼 데다 고객의 신용도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일반적으로 은행보다 대출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금리역전 현상이 일어난 건 금융당국의 대출 총량 규제로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높이고 우대금리는 깎는 방식으로 대출 금리를 인위적으로 높이면서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 교수는 “조달금리 등 여러 조건을 봤을 때 상호금융의 대출금리가 은행보다 낮은 건 정상적인 상황으로 볼 수는 없다”며 “일률적인 총량규제가 초래한 일시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호금융 관계자는 “시장의 준거금리를 기반으로 수익성을 고려해 금리를 정했을 뿐 공격적인 마케팅을 위해 인위적으로 (금리를) 낮춘 게 아니다”며 “오히려 대출 총량 규제로 인해 시중은행의 금리가 올라간 게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과 격차 벌리는 상호금융 신용대출 평균 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은행과 격차 벌리는 상호금융 신용대출 평균 금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총량 규제의 역설 금리 역전 현상만이 아니다. 대출 총량에서 전세대출이 제외되며 시중은행이 다시 대출 재개에 나서고 있지만, 은행권 대출 중단의 풍선효과로 고객이 쏠렸던 상호금융의 대출 창구는 닫히고 있어서다. 새마을금고는 11월 29일부터 신규 주택구입목적의 주담대를 중단했고, 신협도 30일부터 가계대출 전체의 신규 취급을 중단했다. 

반면 하나은행은 10월20일부터 중단했던 신규 가계대출을 11월23일 재개했고, 농협은행도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주담대를 다시 시작한다. ‘대출 폭탄 돌리기’인 셈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특정 은행이 대출 중단 등으로 공급을 줄이면 다른 은행으로 대출수요가 몰리게 된다”며 “연초 세운 계획대로 대출 공급을 하던 은행 입장에서는 폭탄을 맞는 셈”이라고 말했다.  

'두더지 잡기'식 대출 중단 등이 이어지며 대출자도 혼란에 빠졌다. 은행에서 돈줄이 막힌 고신용자가 2금융권으로 몰리며 저신용자들의 돈줄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저신용자들이 돈을 빌리는 창구인 카드론도 고신용자의 비중이 늘고 있다. 삼성카드의 경우 지난 9월 기준 금리 10% 미만 회원 비중이 24.79%로 전월 대비 7.56%포인트 늘었다. 카드론 금리가 10%보다 낮은 경우 고신용자들이 받은 대출로 본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 앞서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 앞서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집값 상승 등으로 자금 수요는 늘었는데 총량 규제를 하다 보니 대출자 입장에서는 높은 대출금리를 부담해야 돈을 빌릴 수 있게 됐다”며 “시장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총량 규제로 실수요자들이 높은 가산금리를 내거나 제2금융권이나 사금융 등으로 내몰리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금융당국은 강도 높은 총량 규제의 부작용보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인 데 주목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3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1년 전보다 9.7% 늘며 2019년 4분기 이후 7분기째 이어지던 상승세가 처음으로 꺾였다.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29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대출금리 상승 등에 대한 질의를 받은 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이뤄지며 대출금리가 오른 측면이 있다"면서 "가계부채 관리 효과가 조금 나타나고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