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보고서에서 중국 기업의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2020년 9%에서 2024년 17%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반도체 매출이 향후 3년간 연평균 30% 성장한다는 전제에서다. 2020년 중국 반도체 매출은 전년 대비 30.6% 늘었다.
반면 SIA는 한국의 글로벌 점유율은 향후 3년간 약 20%를 유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과 중국의 점유율 격차가 2020년 약 10%포인트에서 3년 후 3%포인트로 좁혀진다는 얘기다. 중국은 지난해 또는 올해 일본(현재 3위), 유럽연합(4위·EU)을 제치고 반도체 점유율 3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WSJ “프로젝트 잇단 실패”와 다른 평가
SIA는 “5년 전 3.8%에 불과했던 중국의 반도체 점유율은 미·중 긴장 고조와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조달 특혜 등 국가 차원의 노력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 추이 및 전망.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창업 움직임도 활발하다. 중국에선 2020년 한해에만 1만5000여 개의 반도체 기업이 설립됐다. SIA는 “신생 기업 상당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나 인공지능(AI) 칩 등 고급 칩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라며 “이미 다수의 회사가 최첨단 칩을 개발했거나 ‘테이프 아웃(Tape-Out·팹리스에서 제품 설계를 마치고 파운드리 회사로 설계도가 전달되는 것)’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중앙처리장치(CPU), GPU 등 고급 칩의 합산 매출은 2016년 6000만 달러(약 710억원)에서 2020년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로 급증했다.

중국 주요 반도체 기업 매출 성장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반면 지난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에서 최근 3년간 최소 6개의 대규모 반도체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WSJ은 “이들 프로젝트에 중국 정부는 최소 23억 달러(약 2조7000어원)를 지원했다”며 “일부 기업은 단 한 개의 반도체조차 만들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중국이 대형 반도체 프로젝트에 실패했더라도 한국과의 격차를 꾸준히 줄여나갈 것이란 점에서 국내 전문가 사이에선 ‘한국 반도체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이병훈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11일 열린 ‘나노·반도체 종합연구소 설립 타당성 검토 산·학·연 토론회’에서 “반도체 격변기에 한국이 앞서 나가지 못하면 앞으로 10~20년, 늦어도 30년 안에는 일본처럼 쫄딱 망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반도체특별법, 시장 기대 못미쳐”
이 교수는 “반도체 기술은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 간 경쟁, 나아가 국가연합 간의 경쟁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분산된 인적 자원과 인프라를 국가 차원에서 새롭게 구조화하고 단계별 연구·개발(R&D)을 통해 반도체 전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산업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 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이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관련 업계에선 세액 공제 규모가 기대에 못 미치고, 인력 양성 지원 정책 등이 미흡하다는 반응이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국책 반도체 전문 연구소가 없고, 인력 공급과 R&D 인프라도 부족하다”며 “정부의 K-반도체 육성전략과 더불어 반도체 관련 R&D 인력 확충, 반도체 종합연구원 설립, 수도권 반도체 공장 입지 지원과 규제 개선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