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정오쯤 청와대 분수대 앞. 한 여성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는 경찰관 30여명이 서로 팔짱을 낀 채 만든 ‘인간 띠’에 막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청와대 연풍문으로 향하기 위해선 그 장벽을 뚫어야 했다. 뒤따르던 두 남성이 항의하기도 했지만, 결국 여성은 들고 있던 편지를 바닥에 내려놓은 채 발길을 돌렸다. 앞선 접촉에 편지는 구겨졌다. 그는 “청와대에 편지를 되돌려주려고 하는 건데 길을 막는 게 말이 되냐”며 “대통령도 똑같은 아픔을 겪기 바란다”고 말했다. 영하의 날씨에 청와대 앞에 선 여성은 지난 2020년 서해 상에서 북한군에게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당시 47세) 씨의 부인이었다.

북한에 피격돼 사망한 해수부 공무원의 부인은 경찰에 가로막혀 청와대 연풍문으로 향하지 못했다. 심석용 기자

이씨 유족들은 바닥에 문 대통령의 편지와 정보공개청구 소송 판결문을 두고 발길을 돌렸다. 심석용 기자
유족 “대통령 약속은 거짓말”

북한군 피격으로 서해상에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의 유가족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진상 규명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편지를 반환 및 청와대 정보공개 승소판결에 관한 입장 표명을 하고 있다. 뉴스1
문 대통령은 2020년 10월 이군에게 A4용지 한장 분량의 편지를 보냈다. 앞서 이군으로부터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는 취지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편지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마음과 안타까움이 너무나 절절히 배어있어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렸다”면서 “모든 (조사)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 해경의 조사와 수색결과를 기다려주길 부탁한다”고 했다.

북한에 피격돼 사망한 해수부 공무원의 아들이 문 대통령이 보낸 편지를 반환하는 이유를 적은 글. 사진 이래진씨 제공
“정보공개 청구 답변 달라”
이씨의 형 이래진씨는 “재판을 통해 일부 승소해서 공개하라고 한 법원 판단도 무시하는 정부가 민주주의 국가냐”며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고 국민에게 속죄하시고 대통령 말씀대로 행동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유족들은 기자회견 뒤 청와대에 문 대통령의 편지와 정보공개청구 소송 1심 판결문을 두고 갈 계획이었으나 경찰의 제지로 무산됐다. “청와대 쪽으로 다수의 집단 이동은 제한된다”는 이유에서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 유족이 두고 간 편지와 판결문을 받아 추후 청와대 사회통합비서관에게 전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