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아나스타시아 텐(28·여)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에 있는 다리나(26·여)와 연락이 되지 않았던 순간을 얘기하면서였다. 한국의 뉴스에선 전쟁 소식이 전해지는데, 다리나는 안부 문자에 답이 없었다.
여군이 된 ‘세스트르치까’

다리나(왼쪽)와 아나스타시아 텐은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에서 동네친구였다. 아나스타시아는 고향이름을 러시아어 표기인 '니콜라예프' 대신 우크라이나어인 '미콜라이우'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사진 아나스타시아 텐 제공
고려인 가정에서 자란 아나스타시아에게 같은 동네에 살던 다리나는 친동생 같은 친구였다. 친자매처럼 서로를 ‘세스트라(언니)’와 ‘세스트르치까(동생)’로 불렀다. 2년 전 다리나는 우크라이나 공군에 자원입대했다. 이듬해 아나스타시아가 한국에 오면서 멀리 떨어지게 됐지만, 둘 사이는 더 돈독해졌다. 다리나가 있는 우크라이나 빈니차의 공군기지와 아나스타시아가 있는 한국의 한 보건소에서 7시간의 시차를 두고 매일 메신저로 일상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의 낯선 환경에서의 고충을 나눴다.
자매 같은 둘의 대화에 전쟁이란 무거운 이야기가 등장한 건 지난달 초부터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가능성을 언급한 후였다. 미국 국무부는 벨라루스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가족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다리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언니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전쟁이 나면 군인인 다리나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야 했다. 다리나가 보낸 짧은 영상도 불안을 키웠다. 영상 속 동생은 군복을 입은 채 우크라이나 국기 앞에서 손을 모으고 “친구들,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아나스타시아 텐과 다리나의 대화. 아나스타시아가 ″제발 조심해″라고 하자 다리나는 ″꼭 조심할게요. 걱정 크게 하지마요. 잘 될거에요″라고 답한다. 사진 아나스타시아 텐 제공
뒤늦게 온 영상 메시지에 울컥
다리나였다. 텔레그램 영상 메시지 속에서 그는 “걱정하지 마”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나스타시아는 “그 순간 울컥해서 눈물을 쏟았다. 다리나가 ‘언니 사랑해. 우린 잘 될 거야. 꼭 이길 거야’라며 오히려 저를 달래줬다”고 말했다.

다리나는 2년전부터 우크라이나 공군부대에서 복무중이다. 올해 5월 제대를 앞뒀지만 연장복무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 아나스타시아 텐 제공
“전쟁 끝낼 수 있다면 뭐든 할 것”

지난 2일 밤 퇴근 후 아나스타시아 텐이 텔레그램으로 우크라이나에 있는 다리나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아나스타시아 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