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경제 6단체장과 오찬 회동을 할 예정이다. 당초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5개 단체로 예정됐으나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새로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재계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오찬이 성사되는 방식을 놓고 재계단체들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막후 신경전’을 벌였다. 과거 당선인 신분으로 경제 6단체장을 한꺼번에 만난 전례가 없는 데다 ‘위상 회복’을 벼르는 전경련과 ‘역할 확대’를 노리는 대한상의가 자존심 경쟁을 하는 양상이다.
상의·중기중앙회 항의로 다시 연락
복수의 경제단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산하의 일정팀 관계자가 전경련 측으로 먼저 연락했다. 윤 당선인이 경제단체장과 오찬을 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이 다른 경제단체에 이 같은 연락을 돌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상의·중기중앙회 등이 불쾌한 기색을 비쳤다. 전경련은 과거 대기업을 대표하는 ‘맏형’ 격으로 꼽혔으나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선 외면당했다. 이후 청와대 행사 등에 초청받지 못하면서 ‘전경련 패싱’이란 말까지 나왔다. 대신 상의가 각종 행사를 주도하며 재계의 구심점으로 부상했다.
중기중앙회 측도 인수위 측의 이 같은 소통 방식에 대해 아쉬워했다고 한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동해안 산불 현장에 방문했을 때 김기문 회장을 만나 ‘금명간 중기중앙회를 방문해 중소기업 상공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해서 우리 쪽을 가장 먼저 방문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1일 오찬은 당선인 측에서 다시 각 경제단체에 연락해 일정을 확정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윤 당선인과 허창수 전경련 회장, 최태원 상의 회장, 구자열 무협 회장,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 손경식 경총 회장, 최진식 중견련 회장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참석 대상자도 중견련이 추가돼 6개로 늘었다. 중견련은 문재인 정부 들어 전경련 대신 주요 경제 행사에 초청을 받았던 단체다.
당선인 측이 전경련에 연락한 배경을 두고도 해석이 엇갈린다. 권태신 부회장은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려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현 정부의 ‘전경련 패싱’과는 반대 행보라는 취지의 발언이다.
또 다른 전경련 핵심 관계자도 평소 당선인 일정을 조율하는 장제원 비서실장에 대해 “장 실장은 국회 법사위에서 오래 활동해 상법 개정 등을 놓고 우리(전경련)와 접촉할 일이 있었던 편”이라고 소개했다. 전경련 안팎에선 윤 당선인 측이 자신에 가장 먼저 연락해오면서 전경련에 다시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한편 경제단체에 연락하는 방식도 이전과 달랐다. 전경련 관계자는 “역대 대통령은 취임 이후 경제단체장들을 만날 때 주로 개별적으로 단체에 연락했지 이번처럼 한 단체를 통해 일정을 조율하려 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다만 또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전경련을 창구로 삼으려 했다기보다는 그냥 한 군데 연락하면 다섯 곳 모두에 전파되겠거니 쉽게 생각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경제 6단체장 만나는 첫 당선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일 때 특정 단체 대신 4대 그룹 총수와 직접 회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 경제 5단체장과 만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선이 끝난 후 첫 공식 방문지로 전경련을 골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인일 때 가장 먼저 중기중앙회와 소상공인단체연합회에 들렀다.
이에 따라 그동안 경제단체와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편이었던 문재인 정부와 대비해, 새 정부가 ‘친기업’ ‘친시장’ 메시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 수정 요청할 것”
경제단체들은 “민·관 소통 확대”(상의), “물류 문제 해소와 공급망 강화”(무협), “과도한 기업 형사처벌 조항 축소”(경총), “(윤 당선인이 약속한)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소 대통령 직속 상생위원회 조속 설치”(중기중앙회), “반기업 정서 해소와 성장 사다리”(중견련) 등을 건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밖에도 통상분야가 산업부에 남아야 할지 외교부로 가야 할지 논의가 있는 만큼 당선인이 경제단체장들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묻지 않을까 예상한다”며 “과학기술부총리 신설 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한편 이후에도 새 정부에서 재계 ‘맏형’ 자리를 놓고 경제단체들의 치열한 경쟁이 이어질 조짐이다. 경제단체들은 당선인 측에 가장 먼저 자기 단체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