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운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이 지난 4일 경기 정부과천청사 공수처에서 '고발사주' 의혹 수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스1
하남현 사회1팀 차장의 픽 : ‘법정’으로 간 고발 사주 의혹
이번 대선판을 흔든 두 개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대장동 개발 특혜 비리 의혹,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고발 사주 의혹’입니다. 특히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의 경우 지난해 1월 공식 출범한 ‘신생 기관’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지난해 9월 당시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였던 윤석열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죠. 공수처는 조직 내 ‘넘버2’인 여운국 공수처 차장을 주임검사로 지정하고 검사 인력의 절반 이상을 수사에 투입하며 사활을 걸었습니다.
공수처는 지난 4일 8개월에 걸친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정치적 파장에 비해 수사 성과는 초라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고발장 작성자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예상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무혐의 처분됐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 다른 피의자도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만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인권 침해, 불법 사찰 논란만 낳은 부실 수사
공수처는 수사력을 총동원했지만 ‘손 검사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제보 내용만 확인하는 수준에서 수사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 수사 과정에서 얻은 여러 오명에 비하면 결과가 너무 초라한 것이죠.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해 청구한 체포영장 1건과 구속영장 2건은 모두 기각됐습니다. 부실 수사와 함께 인권 침해 논란도 일었죠. 대한변호사협회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은 기본권 침해”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수사 과정에서 야당 의원과 언론인은 물론 일반인까지 무더기 통신 조회한 사실이 밝혀져 불법사찰 논란을 빚었습니다. 고발 3일 만에 당시 야권 유력 대선 주자였던 윤석열 대통령을 입건하며 ‘윤수처(윤석열 수사처)’라는 비판과 함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았지만, 정작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조사조차도 못했습니다.
공수처 입장에선 상처만 남은 수사였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절차가 남았습니다. 재판입니다. 공수처는 이제 재판에서 수사와 기소 그리고 공소 유지 능력을 입증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검사의 배틀필드(전장‧戰場)는 법정”이라고 했죠. “수사도 재판의 준비 과정”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이말을 빌리면 공수처의 진짜 전쟁은 이제 시작입니다.

법정 법원 이미지. Pixabay
‘검사의 선거 개입’ 법정에서 인정될까
더 자세히 볼까요. 손 검사는 2020년 4·15 국회의원 선거에 앞서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후보와 같은 당의 황희석 당시 비례대표 후보 등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할 목적으로 그해 4월 3일 ‘제보자 X’라 불린 지모씨, 최 후보, 황 후보,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검언유착(검찰과 언론의 유착)’ 의혹을 보도한 기자 등에 대한 1차 고발장과 지씨의 과거 판결문 등 관련 자료를 김웅 의원에게 텔레그램 메신저로 전송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가 공직선거법을 어겼다고 공수처는 봤습니다. 또 같은 해 4월 8일 최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관한 2차 고발장을 김 의원에게 전송한 혐의도 있습니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김 의원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공모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다만 사건 발생 당시 김 의원은 민간인 신분이었고 이는 공수처의 기소 대상이 아니어서 최종 기소 여부는 검찰로 넘겼습니다.
여기에 공수처는 손 검사가 범죄 혐의와 관련해 수사정보 등이 담긴 고발장을 입수하는 경우 직무상 누설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고발장을 김웅 의원에게 전송했다고 했습니다.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죠. 또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같이 근무하던 검사에게 지시해 열람·수집한 지씨에 대한 실명 판결문을 김 의원에게 전송했는데, 이를 두고선 개인정보보호법 및 형사절차전자화법을 위반했다는 게 공수처의 판단입니다.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지난해 12월 3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는 모습. 공수처는 지난 4일 손 검사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뉴스1
하지만 공수처의 이런 논리가 법정에서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 씨의 휴대전화와 고발장에 첨부된 판결문 검색 기록 등을 근거로 손 검사의 고발장 전달 행위까진 특정했지만, 작성자는 끝내 밝히지 못했습니다. 고발장을 쓰라고 지시한 사람도, 지시받은 사람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핵심 혐의였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부분에 대해선 기소하지 못했죠.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걸 수사를 통해 증명하지 못한 겁니다.
또 손 검사가 보냈다는 1차 고발장은 실제 고발로 이어지지 않았고, 2차 고발장은 총선 이후에 접수됐습니다. 선거에 영향을 줬다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어긴 것만으로도 범죄가 성립한다”고 합니다. 반면 손 검사 측은 “모든 공소사실의 전제인 고발장 전달 자체를 하지 않았고, 선거와 아무 이해관계도 없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과천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