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정은재(56)씨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날 부산에서 열린 재판 결과를 뒤늦게 전해 들은 뒤였다. 서모(47)씨 등 보이스피싱 조직원 일당의 항소심 선고재판이었다. 정씨의 아들 김후빈(당시 28세)씨는 2년 4개월 전 이들에게 속은 뒤 스스로 삶을 내려놓았다. 최근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정씨는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다.
지난 12일 부산지법은 ‘김민수 검사’를 사칭해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서씨에게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했다. 1심보다 6개월 줄어든 판결이었다. 정씨는 소식을 듣고 주저앉았다고 했다. 그는 “서씨에게 높은 형이 선고되기만 기다리며 버텼다. 그런데 감형이라니…숨이 턱 막혔다”고 했다. 이어 “사람을 죽게 했으면 살인죄를 적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가해자들은 형을 살고 나오면 똑같은 범행을 저지를 게 분명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검사 사칭’ 목소리에 속아 세상 뜬 아들

연구직 공무원을 꿈꾸던 故 김후빈씨는 늘 자신보다 엄마와 동생이 먼저였다고 한다. 사진 정은재씨 제공
서씨 등이 형이 무겁다며 항소한 점도 정씨에게 충격이었다. 결심공판에서 “벌은 주는 대로 달게 받겠다”며 울먹이던 때와 180도 달라진 모습에 정씨는 헛웃음까지 나왔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매번 아들 기일 즈음쯤 날아드는 보이스피싱 문자도 아픈 상처를 들쑤셨다. 낯선 번호의 발신자들은 자신을 “후빈이”라고 칭하면서 정씨를 엄마라고 불렀다. 아들 영정을 들고 법정 맨 앞자리를 지켰던 엄마였지만, 더는 몸과 마음이 견디지 못했다. 병원 의료진은 정씨에게 “공황장애 증상이 있다. 치료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권유했다고 한다.

정은재씨는 지난 1월 아들 후빈씨를 사칭한 문자를 받았다. 사진 정은재씨 제공
피해자 합의 등 이유로 검찰 구형 절반 이하로
부산지법의 2심 재판부는 “서씨 등의 범행수법이 매우 불량한 점, 검사를 사칭한 범행의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결과까지 발생한 점, 유족 등이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한 점을 고려했다”면서도 “피고인들이 범행 일체를 자백하면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 수사기관에서 보이스피싱 범죄단체의 조직 및 수법 등을 비교적 상세히 진술하는 등 수사에 협조한 점이 인정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서씨의 경우 원심에서 피해자 10명과 합의한 데 이어 2심에서 피해자 8명과 추가 합의했고 피해자들이 서씨의 처벌을 원하고 있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