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이 말한 처칠-애틀리…나치 맞선 英 전시내각 '협치'의 모범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추가경정예산안(추경) 관련 시정연설에서 “진영이나 정파를 초월한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면서 ‘처칠과 애틀리 파트너십’을 거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은 전시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면서 “지금 대한민국에는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윈스턴 처칠(1874~1965년, 총리 재임 40~45년, 51~55년)과 클레멘트 애틀리(1883~1967년, 총리 재임 45~51년)가 구현했던 ‘협치’를 전례로 꼽은 것이다. 

처칠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조한 보수당 수장이었고, 애틀리는 복지국가 건설에 앞장섰던 노동당 당수였다. 둘은 정치 성향이 정반대였다. 그러나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양당은 연정을 통해 거국내각을 구성했다. 외교와 전시 대응을 담당하는 총리가 된 처칠은 애틀리를 부총리에 앉혀 내치를 맡게 했다. 

처칠은 나치 독일과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프랑스가 함락된 후 노동당 일부에선 나치와 협상을 주장했다. 이때 애틀리가 처칠에게 힘을 실어줘 의회를 설득해 단결된 모습을 보여줬고, 1945년 나치 독일은 패망했다. BBC는 2011년 보도에서 "연정으로 영국은 전시 충격과 내부 갈등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처칠(왼쪽)과 애틀리

처칠(왼쪽)과 애틀리

 
가디언은 지난 2019년 영국 저널리스트 레오 맥킨스트리의 저서『애틀리와 처칠: 전쟁에선 동맹, 평화 땐 적』을 소개하면서 “처칠과 애틀리가 성격도, 리더십 스타일도 달랐다”고 전했다. 처칠은 불같은 성격에 열정적인 태도였다. 명연설로 사람들을 움직였다. 애틀리는 조용한 성격과 침착한 태도로 사람들을 잘 설득했다. 경제와 복지 등 주요 정책에서도 입장이 달라 심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나치의 위협 앞에선 이념을 내세우지 않고 협치했다. 


전쟁 후 두 사람은 다시 경쟁 구도로 돌아섰지만, 2차 세계대전을 잘 극복한 처칠과 애틀리의 협치는 계속 회자되고 있다. 두 사람은 영국 내에서 존경받는 정치인 수위에 오르곤 한다. 영국 리즈대학교가 2004년 역사학ㆍ정치학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영국 총리로 애틀리가 1위, 처칠이 2위에 꼽혔다. 앞서 BBC 라디오가 1999년 역사학자, 정치인, 정치 평론가 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가장 뛰어난 역대 총리 1위가 처칠, 3위가 애틀리였다.

맥킨스트리는 “처칠과 애틀리는 매우 다른 견해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유지했다. 정당의 이점보다 국익을 우선시했던 둘의 태도는 요즘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모습”이라고 했다.  

대선에서 역대 최소 표차로 당선된 데다 여소야대 정국을 이끌어가야 하는 윤 대통령이 '협치'에 대한 강력한 호소로 처칠과 애틀리를 인용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