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호법이 무력화된 이후 음주운전 사건 법정에서 이와 같은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회가 반년째 보완 입법을 미적거리는 동안 권씨처럼 감형을 받는 상습 음주운전자는 속출하고 있다.

만취 상태로 벤츠 승용차를 몰다 공사 작업 중이던 60대 인부를 치어 숨지게 한 30대 여성이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형량 반 토막 난 ‘만취 벤츠’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의 형량을 높이는 내용과 재범을 가중처벌하는 내용이 골자다. 헌재는 재범 사이의 기간이나 범죄의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똑같이 처벌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음주운전 재범인 권씨는 윤창호법 적용 대상이었으나,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라 2심에서 공소장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검찰은 권씨에게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른 가중처벌 조항을 대신 적용했다. 이 조항은 윤창호법보다 처벌 수위가 낮아 권씨의 형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견된 상황이었다.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구 도로에서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 차례 상습 음주운전자도 감형
2020년 경기도 고양시에서도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남성이 술을 마시고 앞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으나, 윤창호법 위헌 결정으로 징역형 집행유예가 내려진 1심 판결이 뒤집혀 지난 1월 벌금 2000만원으로 감형되기도 했다.
처벌 강화 일변도가 만든 법적 공백

부산국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윤창호씨 빈소에서 윤씨 친구들이 아버지 품에서오열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윤창호법을 발의한 하태경 의원. 연합뉴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는 “위헌 결정이 나온 지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보완 입법이 안 됐다는 건 국회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국회에서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단기 대책만 쏟아내는 것도 문제”라며 “음주운전자에 대한 치료와 교육 등 근본적인 재범 방지책이 같이 나와야 법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