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다니다 직장을 옮긴 10명 중 8명은 다른 중소기업으로 취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수직 이동을 한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첫 취업 때의 직장 규모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 통계로 드러나면서 대기업의 ‘높은 벽’을 실감케 했다.
2020년 기업규모에 따른 일자리이동 통계.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의 이직자는 전체 이직자의 10.1%에 그쳤다. [자료 통계청]
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일자리이동 통계’를 보면 2019년과 2020년 사이 이직한 사람은 총 367만4000명이다. 이중 중소기업에서 이직한 사람이 270만8000명으로 대기업(44만4000명)보다 6배 이상 많았다. 중소기업 취업자 수가 더 많다는 점을 고려해 이직자 비율로 비교해도 중소기업(17%)이 대기업(11.6%)보다 높았다.
중소기업 직장인의 활발한 이직 활동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으로의 이직은 제한됐다. 중소기업 출신 이직자 중 대기업으로 이직한 비율은 10.1%(27만4000명)였다. 이직을 통해 몸값을 높이면서 더 좋은 회사로 가는 수직 이동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청년 구직자들 사이에서 “첫 직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대기업 출신 이직자 중에서도 34.5%만이 대기업으로 이동했다. 절반이 넘는 57.5%는 중소기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다 보니 이직자 중 39.8%는 회사가 바뀌면서 되레 임금이 줄었다. 이들 중 47%는 줄어든 월급이 50만원 이상이었다. 임금을 높이거나 더 좋은 복리후생을 위해 이직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절반 가까운 직장인이 임금 감소를 감수하면서까지 회사를 옮겼다. 코로나19 등으로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원하지 않는 이직이 상당수 발생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지난 4월 서울 마포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가 구인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임금이 증가한 59.2% 중에서는 54%가 50만원 미만으로 월급이 늘었다. 연봉을 올리며 이직했다고 해도 상승 폭은 크지 않았다는 의미다. 일자리를 이동하면서 임금이 줄어든 비율은 전년도만 해도 31.7%였다. 1년 새 8.1%포인트가 늘었다.
이직자 대부분은 자영업자가 아닌 월급쟁이였다. 비임금근로자로 분류되는 자영업자 중에서 이직자는 전체 이직 시장 규모의 7.2%에 불과했다. 자영업을 하다가 직장을 새로 구한 사람의 83.6%는 월급쟁이로 전직을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에 소속돼 월급을 받다가 이직한 345만4000명 중 자영업을 선택한 사람은 22만7000명으로 6.6%에 불과했다.
세종=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