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금야금 우크라 삼키는 러…"멜리토폴 편입 주민투표 준비"

지난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 세베로도네츠크 일대에서 러시아군 공격으로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 세베로도네츠크 일대에서 러시아군 공격으로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주(州)의 제2 도시 멜리토폴에서 러시아 편입을 위한 주민투표 준비가 시작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침공 4개월째를 맞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 점령지 병합 작업에 나서는 동시에 동부 요충지 함락에 총공세를 퍼붓고 있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을 인용해 이날 "주민들이 자포리자주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며 "올해 말 러시아 연방 편입을 목표로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도 러시아의 이 같은 계획을 확인했다. 개전 초기 러시아군에 저항하다 체포됐던 이반 페도로우 멜리토폴 시장은 이날 우크라이나 TV에서 "그들(러시아)은 멜리토폴을 포함한 자포리자주 일부 점령지에서 '주민투표 실시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날 "우리는 우리 미래가 러시아와 연결돼 있으며 러시아가 이곳에 영구적으로 있을 것임을 안다"는 친러 성향의 멜리토폴시 군민 합동정부 수장 갈리나 다닐첸코의 발언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다닐첸코는 페도로우 시장이 붙잡혔던 당시, 러시아군에 의해 새 시장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다닐첸코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참모인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대통령실 제1 부실장이 지난 7일 멜리토폴을 직접 방문해 도시 시찰에 나섰다고도 알렸다. 멜리토폴은 자포리자주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도시다. 2014년 러시아에 강제 합병된 크림반도 북쪽에 위치해 있어 전략적 요충지로 꼽혔고, 개전 초기 러시아군에 함락됐다. 

지난 4일 우크라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주 솔레다르에서 러시아군 폭격으로 무너진 집을 한 노인이 살피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4일 우크라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주 솔레다르에서 러시아군 폭격으로 무너진 집을 한 노인이 살피고 있다. [AFP=연합뉴스]

 
주민투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러시아 측은 오는 9월께 투표를 진행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페도로우 시장은 "러시아가 총구를 들이밀어도 사람들은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알고 있는 러시아가 선전전을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익명의 우크라이나 관리도 로이터에 "현지 주민들은 절대 러시아 연방 가입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포리자주 인근 헤르손주에서는 지난 3월부터 헤르손인민공화국을 세우기 위한 주민투표 계획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곳은 러시아군이 90% 이상 장악 중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헤르손주 전역에서는 지난달부터 러시아 통화 루블화가 법정 화폐로 통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용문서나 학교 교육도 러시아식으로 바뀌고, 교육과 통신 분야에도 러시아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 주민들에 대해 러시아 국적 취득 절차를 간소화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한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일 크렘린궁에서 참모들의 보고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8일 크렘린궁에서 참모들의 보고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무력으로 점령한 크림반도에서도 '주민투표 전략'으로 러시아 영토로 강제 합병했었다. 같은 해 동부 돈바스에서도 친러 반군 세력이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해 주민투표 절차를 거쳤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점령지에서 실시되는 모든 주민투표를 불법으로 보고, 그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가 장기적으로 이들 지역에 강력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한편 러시아군은 동부 돈바스 요충지 함락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날 외신은 동부 돈바스의 최전방 격전지인 루한스크주 세베로도네츠크 대부분이 러시아군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도심에서 퇴각해 현재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상태라고 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세베로도네츠크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동부 전선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라며 "침공 이래 가장 힘든 전투이며, 여러모로 이곳에 돈바스의 운명이 달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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