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만 때령, 토하는딩"…카톡서 들킨 피투성이 모텔 살인 진실 [사건추적]

지난해 4월 1일 전주 한 모텔에서 20대 남성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당시 이 남성의 선배가 주차장에 세워진 승용차 트렁크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꺼내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TV(CCTV) 화면. 사진 전주지검

지난해 4월 1일 전주 한 모텔에서 20대 남성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당시 이 남성의 선배가 주차장에 세워진 승용차 트렁크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꺼내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TV(CCTV) 화면. 사진 전주지검

피투성이 된 전주 모텔 20대…"외상성 쇼크사"

전북 전주의 한 모텔에서 20대 남성이 조폭 등 지인 3명에게 폭행당해 숨졌다. 법원은 사건 당시 조폭과 통화한 여성이 보낸 '(피해자가) 토하니 그만 때리라'는 취지의 메시지 등을 토대로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전주지법 형사12부(부장 이종문)는 지난달 19일 강도치사·공동감금 등 혐의로 기소된 A씨(29)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4월 1일 오후 11시40분쯤 전주시 효자동 한 모텔에서 B씨(당시 26세)를 객실에 가두고 주먹과 발, 둔기 등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다.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조폭 C씨(28)에게 징역 10년, A씨 친구 D씨(29)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조폭 지시로 메시지를 삭제한 혐의(증거인멸)로 기소된 E씨(27·여)는 벌금 350만 원을 선고받았다.

도대체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심 판결문과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전주 모텔 살인 사건' 당시 범행을 주도한 A씨(29)가 폭행에 사용한 알루미늄 배트를 A씨 친구가 객실로 가져가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TV(CCTV) 화면. 사진 전주지검

'전주 모텔 살인 사건' 당시 범행을 주도한 A씨(29)가 폭행에 사용한 알루미늄 배트를 A씨 친구가 객실로 가져가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TV(CCTV) 화면. 사진 전주지검

강도치사·공동감금 징역 18년 등 선고

11일 전주지법 등에 따르면 이들 4명은 겉으로는 친구와 선후배 사이였지만, B씨를 오랫동안 괴롭혀왔다. 범행을 주도한 A씨는 속칭 '유령 법인'을 설립한 뒤 법인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들어 이를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유통해 왔다. 이런 범행으로 번 돈 일부를 B씨에게 빌려주거나 투자를 했다가 사달이 났다.


사건은 지난해 3월 3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일하던 B씨는 이날 돈 문제로 A씨에게 폭행을 당한 뒤 투자를 제안했다. "회사에 판매 대금을 직접 입금하면 지원금이 한 달 후 13%가 환급되니 3500만 원을 투자하면 이익금 중 70%를 주겠다"는 내용으로다. 이에 A씨는 B씨 어머니 계좌로 3500만 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B씨 제안은 사실이 아니었다. A씨가 이튿날 조폭 등 2명에게 지시해 B씨를 추궁한 결과 "회사에 돈을 입금하지 않았고, 1000만 원은 빚 갚는 데 썼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폭 등은 B씨 어머니에게 투자금을 돌려 달라고 했다가 불발되자 오후 1시35분쯤 B씨를 모텔로 데리고 갔다. 이후 B씨를 때리고 위협해 B씨 어머니 계좌에 남은 2500만 원을 돌려받았다.

지난해 4월 1일 전북 전주의 한 모텔에서 20대 남성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8년을 선고받은 A씨(29)가 생전 피해자와 텔레그램에서 주고받은 대화 내용 캡처. 사진 피해자 법률대리인

지난해 4월 1일 전북 전주의 한 모텔에서 20대 남성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8년을 선고받은 A씨(29)가 생전 피해자와 텔레그램에서 주고받은 대화 내용 캡처. 사진 피해자 법률대리인

"투자금 3500만 원 가로챘다" 모텔 감금·폭행

사건 당일 오후 6시쯤 모텔에 합류한 A씨는 알루미늄 배트를 이용해 B씨를 때렸다. 나무로 된 구둣주걱과 스타일러 받침대, 철제 옷걸이 등 객실 물건도 이용했다. 검찰은 A씨 친구가 모텔 주차장에 주차된 승용차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꺼내 객실로 가져가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확보했다.

B씨는 폭행과 협박에 못 이겨 친구와 친척 등 8명에게 전화해 각각 300만~1000만 원을 빌려 달라고 했지만, 친구 1명만 60만 원을 입금했다. A씨는 같은 날 오후 11시40분까지 B씨를 폭행하다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심폐소생술을 한 뒤 119에 신고했다.

119구급대 도착 당시 B씨는 심정지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인은 외상성 쇼크사였다. 경찰은 사건 당일 자정 무렵 모텔 안팎에서 A씨 등 3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숨진 B씨의 머리와 허벅지 등에서는 피멍과 찢긴 상처 등이 발견됐다.

'전주 모텔 살인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조폭이 과거 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 피해자에게 보낸 편지. 사진 피해자 법률대리인

'전주 모텔 살인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조폭이 과거 교도소에 수감 중일 때 피해자에게 보낸 편지. 사진 피해자 법률대리인

조폭 "때린 적 없다"…법원 "폭행 공범"

경찰은 119에 신고한 점 등을 감안해 A씨 등을 특수폭행치사 혐의로 송치했으나, 검찰은 "피해자에게 돈을 빼앗고 배신을 못하게 겁을 주려는 목적이 크다"고 보고 강도치사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강도치사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유기징역이고, 특수폭행치사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A씨 등은 "A씨 혼자 폭행했고, 조폭 등은 때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나머지 2명도 폭행에 가담한 공범으로 봤다. 사건 당일 조폭과 영상 통화를 한 여성이 조폭에게 "고만 때령, 토까지 하는딩"이라는 카톡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돼서다.

재판부는 "B씨가 빌린 돈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모텔에 머물렀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다"는 취지다. ▶A씨가 텔레그램 메시지로 '내가 너 안 죽이면 사람이 아니다'고 협박해도 B씨가 '죄송합니다, 정신 차렸습니다' 등 거역하지 못한 점 ▶조폭이 교도소 수감 당시 보낸 편지에서 "편지 받는 순간 떠나라. 아니면 니(네) 주변 다 죽인다"고 협박한 점 등을 근거로 댔다.

조폭과 선배 등에게 폭행당해 숨진 20대 남성 아버지가 검찰에 낸 탄원서. 사진 피해자 법률대리인

조폭과 선배 등에게 폭행당해 숨진 20대 남성 아버지가 검찰에 낸 탄원서. 사진 피해자 법률대리인

"엉덩이만 때려"…재판부 "온몸서 피하 출혈 발견"

A씨는 "때린 건 맞지만 죽을 줄은 몰랐다"고 했으나, 재판부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알루미늄 배트로 엉덩이 부분만 때렸다"는 A씨 주장과 달리 B씨 온몸에서 피하 출혈이 발견돼서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다고 하나, 태도 등에 비춰볼 때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피해자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A씨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사기방조 등 혐의도 모두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A씨가 전달·유통한 통장 등이 실제로 보이스피싱에 이용돼 25명이 12억5600만 원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