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유가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 많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9일 전국 주유소에서 보통 휘발유는 L당 평균 2048.47원에 판매됐다. 지난달 26일 2000원 선 위로 치솟은 후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가가 바닥을 찍었던 2020년 5월 15일 1247.58원과 비교해 64.2% 올랐다.
코로나 초기 15달러 국제유가, 이제 120달러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원유가 아닌 휘발유 가격을 따져보면 국내ㆍ외 격차는 더 심하다.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보통 휘발유에 해당하는 옥탄가 92RON 휘발유는 9일 배럴당 153달러에 팔렸다. 2020년 4월 22일 기록했던 14.61달러 대비 10배 상승했다.
국제유가가 8배, 국제 휘발유 가격이 10배 급등할 때 국내 휘발유 소매가는 60% 정도 뛰었다. 바로 ‘유류세의 역설’ 때문이다.
세금 비중 커 덜 올라보이는 ‘유류세 역설’
워낙 유류세를 많이 부담하고 있었던 탓에 유가 상승을 덜 체감하는 것뿐이다. 각종 세금을 제한 가격을 비교하면 실체가 극명히 드러난다. 유가가 바닥이었던 2020년 5월 보통 휘발유 기준 L당 300원대 후반이었던 것에서 이달 1400원 안팎으로 4배가량 올랐다.
이마저도 배럴당 120달러에 이르는 최근 국제유가 시세를 제대로 반영한 게 아니다. 보통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유가를 흐름을 따라간다. 원가만 놓고 보면 한국 소비자도 국제유가 버금가게 오른 유류비를 이미 부담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유류세, 서유럽 선진국과 어깨 나란히
그런데도 한국의 석유제품 가격 변동이 덜 한 건 유류세 비중이 그만큼 높아서다. 대한석유협회가 2020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휘발유 기준 한국의 세금 비중은 56%다. 한국 못지않게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47.2%)도 앞지른다. 스위스(55.4%), 덴마크(60.8%), 독일(61.4%), 핀란드(64.1%) 등 물가 비싸고 환경 규제가 엄격하기로는 손에 꼽히는 서유럽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세계 3대 산유국으로 유류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21.7%(2020년 기준)인 미국 상황은 그래서 한국과 차이가 크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집계 결과 이달 6일 기준 휘발유 소매가(주간 평균)는 갤런당 4.876달러다. 코로나19로 휘발윳값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던 2020년 4월 27일 1.773달러와 비교해 3배 가까이 올랐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유류세 착시, 소비자물가에도 영향
덕분에 한국의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미국(5월 기준 8.6%) 등의 절반 안팎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가 물가 관리를 유독 잘해서가 아니다. 급등한 집값(자가 주거비) 반영을 제대로 안 해서, 억지로 공공요금을 묶어놔서이기도 하지만 ‘유류세 착시’도 한몫을 했다.
물론 반길 일은 아니다. 두터운 세금으로 인한 착시 효과를 걷어내면 이미 한국 소비자도 다른 국가 못지않게 오른 값을 주고 석유를 쓰고 있어서다. 향후 국제유가가 내려갈 때 유류세 때문에 한국 석유제품 소매가격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디게, 소폭 내려갈 것이란 점도 불편한 진실이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연장 등을 내부에서 저울질 중이지만 별다른 효과 없는 ‘생색내기’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