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정보가 붙어 있다. 뉴스1
[금융SOS]
A씨가 뒤늦게 빌라의 등기를 떼보니 전세계약을 맺은 당일에 임대인이 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같은 건물의 또 다른 빌라의 매매가격을 알아보니 전세금과 큰 차이가 없는 2억5000만원 선이었다. 이른바 ‘깡통 전세’였다.
문제는 A씨가 입주 다음 날에 동사무소에 들러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았다는 점이다. 공인중개사는 “확정일자가 늦어 우선변제권과 대항력이 뒷순위로 밀린 탓에 전세금을 모두 돌려받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그동안 모아놨던 돈을 모두 전세금에 쏟아부었는데, 전 재산을 날리게 될 것 같아서 두렵다”고 토로했다.
A씨처럼 ‘깡통 전세’에 입주한 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각종 전세 사기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전세반환보증 사고는 총 2799건으로, 사고 총액은 5790억원에 달했다. 1년 전보다 391건이 늘었고, 피해 금액도 1108억원이 증가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세가, 매매가 70~80% 넘지 말아야”
특히 전세계약 하려는 집이 ‘깡통전세’ 매물인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깡통전세'는 전셋값이 매매 가격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준의 매물을 말한다. 향후 매물의 가격이 전셋값보다 낮아지면 돈이 부족한 임대인이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모두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커서다. 임대인이 해당 주택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과 전세금을 합친 액수가 매매가와 비슷해도 주의해야 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셋값과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이 매매가의 70~80%를 넘게 되면 ‘깡통전세’로 의심할 수 있는 만큼 임대차 계약할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 확인도 중요하다. 해당 부동산에 부과된 재산세나 상속세, 증여세, 종부세 등은 전세보증금보다 우선 환수할 수 있다. 부동산을 압류해 경매로 넘겨 환수한 돈을 조세 당국이 세입자보다 먼저 가져간다는 뜻이다. 임대차 계약 전 국세청 '미납국세 열람제도'를 통해 임대인의 미납국세를 미리 확인하거나 임대인에게 세급납부증명서 등을 요구해야 한다.
전입신고는 다음날부터 효력…특약 적극 활용해야
문제는 임대인이 전세계약을 맺은 당일에 해당 매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뒤 돈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임차인이 전세금을 모두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전입신고와 근저당권 설정을 같은 날에 했더라도, 근저당권이 전입신고에 따른 대항력보다 선순위인 만큼 경매 등으로 회수한 돈을 대출 기관이 먼저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피하려면 전세계약서의 특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계약서의 특약에 ‘전입신고의 효력이 발생하는 계약일 다음 날까지 계약 당시 상태로 유지한다’는 특약사항을 기재하면 이러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특약을 포함한 계약서를 작성한 뒤 동사무소에서 확정일자를 받고, 해당 주택에 거주자가 없으면 잔금을 치르기 전 미리 전입신고를 해 우선변제권(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우선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을 빠르게 확보하고 대항력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전세금 돌려줄 테니 전입신고 말소? …“그건 집주인 사정”
하지만 전세금을 돌려받기 전에 전입신고를 말소하는 것은 위험한 만큼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전입신고를 말소한 뒤 임대인의 채무 관계로 인해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의 순위가 낮아져 전세금을 돌려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
법무법인 법도의 엄정숙 변호사는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어서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온전히 집주인의 사정”이라며 “집주인이 대출을 못 받아서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겠다고 하면 전세금반환소송 제기해 돌려받을 수 있고, 승소하면 소송 비용까지 임대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