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위기' 120개국 머리 맞댄 WTO…러 연설 땐 집단퇴장도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방의 한 농부가 자신이 생산한 곡물을 보여주고 있다. [A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방의 한 농부가 자신이 생산한 곡물을 보여주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쏘아 올린 식량 안보와 식품 가격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120개국 통상 장관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된 제12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WTO는 약 5년 만에 열리는 이번 회의를 통해 전 세계 애그플레이션(곡물 가격 상승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각국의 식량 수출 제한 조치를 해제 또는 완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오는 15일까지 열릴 각료 회의 주요 의제는 ▶식량·에너지 위기 해소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유예 ▶불법 어획에 대한 각국의 보조금 금지 ▶WTO 개혁 등이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1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12차 WTO 각료회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AP=연합뉴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1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12차 WTO 각료회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AP=연합뉴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나흘간 열릴 회의에서 "성과가 나오기까지 장애물은 많겠지만 긴박한 문제 중 한두 가지는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했다. 그는 특히 "(곡물) 수출 제한 금지를 제한하는 식량 안보 선언에 회원국들이 동의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현재 30개 이상의 국가가 식량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은 "75만명이 기아 또는 사망에 즉각 직면해 있고 기근 위험에 놓인 이들은 46개국 4900만명으로 사상 최다 수준"이라며 "곡물 수출국은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대한 식량 판매를 제한하지 않겠다는 데 동의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FT 등에 따르면 러시아의 흑해 봉쇄로 막힌 2500만t의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길을 트기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위해 러시아·터키와 협상 중인 유엔(UN)은 곡물을 실은 화물선의 안전한 통행을 위한 회담을 주도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에서 12차 각료회의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WTO 제공]

1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에서 12차 각료회의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WTO 제공]

댄 프루진 WTO 대변인은 이날 비공개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대표는 기립 박수를 받고 러시아 대표는 비난을 받는 등 긴장이 고조됐다고 전했다. 막심 레쉬트니코프 러시아 경제개발부 장관의 연설 직전 약 30명의 대표가 회의장에서 퇴장했고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유럽연합(EU) 무역위원은 "러시아의 불법적이고 야만적인 침략"을 비난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EU 57개국 대표들은 우크라이나와 연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장관들은 회의를 거쳐 전 세계 식량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공동선언문에 합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을 촉진하고 식량과 농업 시장의 기능을 되찾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이다. 선언문 초안에는 "식량 안보 문제를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담겼다고 한다.

이번 회의에서는 수개월째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포기 문제도 다룬다.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WTO는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을 유예하는 방안에 회원국들이 합의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세계무역기구(WTO) 제12차 각료 회의가 시작한 날 스위스 제네바의 WTO 본부 건물 앞.[AF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세계무역기구(WTO) 제12차 각료 회의가 시작한 날 스위스 제네바의 WTO 본부 건물 앞.[AFP=연합뉴스]

또 불법 남획 문제와 관련, WTO는 자국 어민들의 불법 어획을 촉진하는 정부 보조금을 제한하는 방안에 논의한다. VOA는 바다에서의 불법 남획 문제가 WTO의 노력 끝에 20년 만에 합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은 각료회의 개막 기자회견에서 "(마지막 회의가 있었던 2017년 이후) 세계는 더 복잡해졌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코로나19·기후변화와 같은 이런 다중 위기(polycrisis) 혹은 동시다발적 위기는 정말 전례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국가도 이 위기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오는 15일까지 나흘 동안 진행되는 WTO 각료회의는 164개 회원국의 통상장관이 참석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2년마다 개최되는 WTO 각료 회의는 코로나19 사태로 두 차례 연기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