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父 따라 군사전문기자 택했지만 반역죄로 체포된 아들

2020년 7월 16일 러시아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낸 전직 기자 이반 사프로노프. AP=연합뉴스

2020년 7월 16일 러시아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낸 전직 기자 이반 사프로노프. AP=연합뉴스

기자 출신 30대 한 명이 러시아 검찰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주인공은 이반 사프로노프(32)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 전 고문이다. 러시아 검찰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그가 군사 기밀을 해외로 빼돌렸다며 징역 24년을 구형했다. 그가 기자 시절인 2017년 취재를 통해 습득한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러시아 무기 거래 관련 기밀을 체코 정보기관에 넘겼다는 혐의다. 그는 2020년 7월 7일 체포된 상태다.

4일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사프로노프는 구형 직전 담당 검사에게서 “자백하면 12년형으로 감형될 수 있다”는 회유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즉각 거절했다고 담당 변호사인 에브게니 스미르노프가 밝혔다. 사프로노프는 “(감형 회유는) 정의와 상식을 완전히 조롱하는 주장”이라며 “취재 당시 불법 행위는 없었고 공개된 자료를 통해 합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했을 뿐, 넘겼다는 기밀이 어떤 것인지도 드러난 게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가디언은 “사프로노프는 비공개 증거로 기소된 반역죄에 대한 기록적인 선고를 앞두고 있다”며 “러시아 법원은 수십 년 만에 러시아 언론인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소에 대한 판결을 5일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러시아 검찰과 법원은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이번 사건은 기밀로 분류되어 있어 언급할 수 없다”고 했다.   

2020년 9월 2일 법원 심문에 나선 이반 사프로노프. 로이터=연합뉴스

2020년 9월 2일 법원 심문에 나선 이반 사프로노프. 로이터=연합뉴스

 
검찰은 그를 기소한 증거도 기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처리했다. 러시아 대통령 집무실인 크렘린궁은 사프로노프의 체포가 논란이 되자 “그의 이전 취재 활동은 관련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사프로노프 측은 오히려 그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가 연방보안국(FSS)에서 2019년 보도한 이집트에 전투기 수출 문제 관련 심문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그를 겨냥한 국방부의 조작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러시아 독립 언론 홀로드 수석 에디터인 타이시아벡불라토바는 가디언에 “사프로노프가 그의 취재 때문에 체포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징역 24년형은 사실상 종신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방부는 자신의 실패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가장 저명한 언론인 사프로노프를 싫어했다”며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 등은 사프로노프에 대한 형사 사건을 만들어낼 동기와 자원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아버지의 의문사, 아들은 같은 언론사 취직 선택 

지난해 8월 30일 법정에 선 이반 사프로노프. AFP=연합뉴스

지난해 8월 30일 법정에 선 이반 사프로노프. AFP=연합뉴스

 
사프로노프는 2010년부터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와 베도모스티 등에서 군사 전문기자로 활동하다 2020년 5월 로스코스모스 사장의 공보정책 담당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아버지 역시 코메르산트의 군사 전문기자였지만, 2007년 3월 의문사했다. 러시아와 시리아 간 불법 무기 거래를 취재하다가 체포 위협을 받았다던 그는 돌연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졌다. 타살 혐의가 제기되자 지방 검찰이 수사를 개시했지만, 2007년 9월 자살 종결 처리했다.  

그는 3년 만에 아버지가 몸담았던 회사에 취직했지만, 기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 2019년 코메르산트 재직 당시 러시아 의회 의장 사임 계획을 보도했다가 당사자의 요구로 동료 기자와 함께 해고됐고, 그다음 날 러시아 국영 언론규제기관 로스콤나드조르는 코메르산트에 국가 기밀 유출을 이유로 사프로노프의 전투기 수출 관련 기사를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2019년 7월 베도모스티로 옮겨 군사 문제를 다뤘지만, 이듬해 3월 신임 편집장과 갈등을 빚다 동료들과 함께 사임했다.

 
코메르산트는 사프로노프가 체포된 직후 성명을 내고 “그에 대한 혐의는 터무니없다”며 “그는 잘 알려진 대로 갈등을 빚고 코메르산트를 떠났지만, 우리는 그를 여전히 무조건 존경하고 존중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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