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딜링룸에 달러당 원화값이 전일보다 8.8원 내린 1371.4원을 나타내고 있다. 금융위기였던 2009년 4월 1일 이후 13년 5개월 만에 최저다. 사진 국민은행 제공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 거래일보다 8.8원 내린(환율 상승) 달러당 1371.4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화값이 달러당 1370원 선 아래로 밀린 것은 2009년 4월 1일(종가 달러당 1379.5원) 이후 13년 5개월 만이다. 개장과 동시에 달러당 1365원으로 미끄러지며 연저점을 찍은 원화값은 장중 한때 달러당 1375원까지 추락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최근 원화가치 하락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지난달 29일 13여년 만에 달러당 1350원 선으로 밀리더니, 이후 5거래일 만에 20원 더 떨어지며 하락 폭을 키웠다. 연초(달러당 1191.8원)와 비교하면 원화값이 달러당 180원 가까이 하락한 셈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유럽 금융시장은 천연가스 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면서 긴장 상태다. 러시아가 정기 점검을 이유로 지난 2일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보내는 노르트스트림관을 차단한 뒤 공급 재개를 미루고 있어서다. 천연가스 중단 우려에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4일(현지시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유로화는 장중 전 거래일보다 0.7% 하락한 유로당 0.9884달러에 거래됐다. 달러 강세로 지난 22일 유로화 가치는 종가 기준 처음으로 ‘1유로=1달러’ 패리티(Parity)가 깨졌다.
여기에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는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다시 도시를 봉쇄하고 있다. 중국의 서부 경제도시 청두가 전면봉쇄 기간을 연장한 데 이어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광둥성 선전도 사실상 봉쇄에 들어섰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내 주요 경제 도시가 잇달아 봉쇄되면 중국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의 무역도 영향을 받는다”며 “중국 경기 둔화는 원화 약세 압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원화값을 흔드는 건 대외 악재만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던 반도체 수출에 ‘경고등’이 켜지며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무역수지가 월 기준 역대 가장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한 것도 반도체 수출의 부진 탓이다. 지난달 한국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26개월 만에 마이너스(전년 동기 대비 -7.8%)로 꺾였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성장률 전망치를 13.9%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성장률(26.2%)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공급 과잉으로 재고가 늘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어서다.
연내 원화값이 달러당 1400원 선까지 밀릴 것이라는 게 시장의 전망이다. 박상현 연구위원은 “글로벌 긴축 움직임에 유럽발 에너지 위기와 중국 봉쇄 우려 등이 겹치면 원화값은 단숨에 달러당 1400원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도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다 보니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외환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원화값은 연내 하단기준 달러당 1400원 선에 근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