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빗장을 열다, SK·시노펙 합작사 '중한석화' 성공 비결 [SKI 혁신성장 연구]

SK이노베이션 혁신성장 연구

⑤ 중국 빗장을 열다, SK·시노펙 합작사 '중한석화' 성공 비결

다음 달 창립 60주년을 맞는 SK이노베이션은 1962년 대한석유공사에서 출발했다. 1980년 선경(SK의 전신)에 인수된 이후 석유화학, 종합에너지, 바이오, 배터리와 그린에너지까지 섭렵하면서 지난 60년간 변신과 성장을 거듭해왔다. 오늘날 SK를 재계 2위 대그룹으로 만든 토대가 된 SK이노베이션의 혁신성장 10가지 성공 비결에 관한 학술 심포지엄이 지난달 30일 기업가정신학회 주최로 열렸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경영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자리였다. 이날 발표된 내용과 연구결과를 정리해 연재한다. 다섯 번째 혁신성장 스토리는 한중 최대 경협 프로젝트 '중한석화'. 표민찬 서울시립대 경영대학 교수의 분석 발표를 토대로 정리했다.  

'한중석화' 탄생에 걸린 7년

7년. 한중 수교를 맺은 1992년 이후 최대 규모 석유화학 합작 프로젝트인 '중한석화'가 탄생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중한석화는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지오센트릭과 중국의 국영 에너지 기업 시노펙의 합작사다. 중국 후베이(湖北)성 성도 우한(武汉)에서 화학제품을 연간 320만t 생산한다. 굳게 닫힌 중국의 빗장을 여는 데 성공한 결과다.

누구보다 빠르게 중국에 눈 뜨다

SK는 일찍이 중국 시장에 관심을 뒀다. 한중수교 이전부터 민간 차원에서 중국과 꾸준히 교류하며 수교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미 1990년에 중국 현지기업 융더신(永德信)그룹과 합작해 푸젠성(福建省)에 비디오테이프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 최초로 1991년에 베이징지사 설립 허가를 받은 바 있다.

1991년 국내 기업들 가운데 최초로 베이징사무소를 개설한 선경. 사진 SK이노베이션

1991년 국내 기업들 가운데 최초로 베이징사무소를 개설한 선경. 사진 SK이노베이션

 
최고경영자들도 중국 시장에 대한 중요성을 여러 차례 환기했다. 최종현 SK 선대회장은 "중국과의 관계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반드시 긴밀한 사이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사업 추진 방향을 제시했다. 1994년엔 중국 장쩌민(江澤民) 주석을 만나 중국 투자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최태원 SK 회장도 2002년에 "세계 경제의 두 축이 미국과 중국으로 모이고 있다"며 다가올 G2 시대를 예견했다.  


이런 인식 덕분에 중국 사업의 장기적 비전이 마련됐다. 바로 SK에 맞먹는 '또 하나의 SK'를 중국 안에 만드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이다. 중국 현지에서 중국인을 고객으로, 중국 사람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을 만든다는 의미다.

7년 뚝심으로 얻은 결실

2006년. SK는 중국 사업의 전기를 맞이한다. 최태원 회장과 시노펙 왕티엔푸(王天普) 총경리(總經理)가 양 기업의 동반성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왕 총경리의 "산업의 쌀인 에틸렌 사업이 필요하다"는 말에 최 회장은 "SK의 기술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 중한석화 설립의 단초가  되는 순간이었다. 에틸렌은 원유에서 추출한 기초 원료로 플라스틱·건축자재·비닐 등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물질이다.

이듬해 중국 우한에서 에틸렌 공장 착공식이 거행된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환경이 악화한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SK의 기술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합작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중국 경제와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을 관리하는 정부 부서로 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합작사업은 좌초 위기에 놓였다.

2007년 SK와 시노펙의 우한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된 에틸렌 공장 착공식. 사진 SK이노베이션

2007년 SK와 시노펙의 우한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된 에틸렌 공장 착공식. 사진 SK이노베이션

 
SK는 포기하지 않았다. 최태원 회장은 "중동의 산유국처럼 원유나 원재료를 보유하진 않았지만, SK는 지난 40여년 간 국내외에서 여러 석유화학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한 노하우가 있다"며 중국 측을 꾸준하게 설득했다.

5년만인 2011년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파트너였던 시노펙과 전략적 협력 업무협약(MOU)를 체결한다. 2013년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SK와 시노펙의 협력사업을 승인했다. 이어 중국 최고 국가행정기관인 국무원도 사업 승인을 결정했다. 같은 해 합작법인 중한석화 설립 계약에 성공한다. 바스프·엑손모빌 등 글로벌 메이저 석유화학사를 제외하면 아시아 기업 중 중국 에틸렌 사업에 진출한 업체는 SK이노베이션이 최초였다.

합작사업의 완성이 아닌 시작

중한석화는 설립 이듬해인 2014년부터 본격 가동됐다. 첫해부터 흑자를 기록하는 구체적인 성과가 나왔다. 생산량 증대를 위해 2016년 두 달간 정기 보수를 실시했다. 2017년엔 6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SK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동안 중한석화가 벌어들인 자금을 활용, 7400억원을 추가 투자해 설비를 늘렸다. 덕분에 연간 총생산량이 220만t에서 320만t으로 45% 증가했다. 2019년엔 우한석화(武汉石化)의 정유 부문을 인수하기도 했다. SK이노베이션과 시노펙이 함께 성장하자는 강력한 의지와 상호 깊은 신뢰가 쌓인 덕분에 가능했던 투자다. 

중한석화는 현재 후베이성의 최대 석유화학 기업으로 성장했다. 후베이성에 내는 세금 기여도 역시 화학 기업 중 가장 높다. 중한석화는 현재 총자산이 258억 위안(한화 약 5조1000억원). 직원도 2800여명에 달한다. 국가경제와 지역경제 모두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은 중한석화의 경쟁력을 중국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시노펙과 협력 확대를 통한 추가 성장 기회 역시 지속 발굴해 나갈 예정이라고 선언했다.

중한석화의 에틸렌 설비. 사진 SK이노베이션

중한석화의 에틸렌 설비. 사진 SK이노베이션

 

비파괴적 혁신과 글로벌 파트너링 전략의 성공

중한석화의 성공은 '비파괴적 혁신(Nondisruptive Creation)'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결과물이다. 비파괴적 혁신이란 이해관계자 간 이해상충을 최소화해 동반성장을 이루는 혁신을 말한다. SK는 중국 시장에 직접 진출해 중국 대형 국유 기업과 경쟁하며 갈등을 유발하기보다는 시노펙과 글로벌 파트너링을 맺음으로써 중국 정부나 중국 기업과 부딪힐 수 있는 갈등요소를 제거했다. 독자 진출해 중국 기업과 시장경쟁을 하는 '제로섬' 게임 대신 파트너 기업과 서로 강점을 공유해 상생하는 '플러스섬' 게임을 한 셈이다. 

글로벌 파트너링 전략은 단순히 외국 기업과 전략적 협력을 도모하는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다. 두 기업간의 차이점을 결합해 경쟁우위로 삼고, 핵심 능력을 상호 이전해 사업화 성공을 구체적으로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SK는 중한석화 설립 초기부터 '경쟁력 강화 TF'를 중국에 파견해 원가절감 노하우를 전파하고, SK의 경영철학(SKMS)도 이식했다. 

표민찬 서울시립대 경영대학 교수 인터뷰

표민찬 서울시립대 경영대학 교수

표민찬 서울시립대 경영대학 교수

SK이노베이션 창립 60주년 기념 '혁신성장 연구'에 참여하신 소감을 간략히 말씀해주세요.
"요새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어렵습니다. 성공 사례가 드물죠. 이번에 SK이노베이션의 중한석화 사례를 연구하면서 그래도 잘하고 있는 성공사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분석해 다른 한국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할 방향성을 모색해봤다는 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번 혁신성장 연구 심포지엄을 준비하며 얻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사이트는요.
"결국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혁신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연구진 모두 SK이노베이션의 혁신포인트를 핵심 주제로 다룬 이유이기도 합니다. 중화석화 사례 연구의 핵심도 기업의 본질이 혁신적인 운영에 있다는 점입니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선 성장이 필요하고, 성장하려면 끊임없이 혁신해나가야만 한다는 인사이트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석유사업 진출, 종합에너지 기업에서 그린 에너지로의 전환까지, SK이노베이션의 끊임없는 혁신이 우리나라의 성장발전이나 기업경영에 던지는 의미나 화두는 무엇일까요.
"혁신이라는 게 기업에만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인간 개개인들도 혁신이 필요합니다. 사람도 고등학교까진 모방하고 삽니다. 하지만 대학에서부턴 단순히 교재를 읽히며 가르치진 않지요. 인간이 혁신해 나가는 시점이 대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대학 이후부터는 혁신을 계속 이뤄내야만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혁신하지 않으면 뒤처집니다. 혁신이라고 하면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쉽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현재보다 조금만 변하면 되는 거지요. 개인·기업·국가 모두 현재보다 조금이라도 변하려는 노력, 즉 혁신을 해나가야만 합니다."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SK이노베이션의 미래를 전망한다면요.
"이번 연구의 중요한 주제는 '글로벌파트너링'입니다. 기존에 전략적 제휴에 대한 연구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연구에선 전략적 제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글로벌파트너링이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두 단어는 차이가 있습니다. 글로벌파트너링은 기업의 사업화 전략입니다. 단순히 전략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업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까지 고민하는 전략이지요. 중한석화 사례에서 보듯,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파트너링 관점에서 글로벌 사업을 진행합니다. 앞으로도 상대의 장점을 가져오는 데에서 나아가 사업화까지 전략에 담는 혁신의 문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