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지난달 26일 주 전 위원장 직무정지를 결정한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 황정수)가 아닌 다른 부로 진행 중인 가처분 사건들을 배당해 달라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공문에서 “직무정지 결정에서 보듯 재판부가 절차적 위법 판단에서 더 나아가 정치의 영역까지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가 당을 상대로 낸 가처분 사건 심문기일은 오는 28일로 예정돼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고, 서울남부지법은 22일 오후까지 국민의힘이 보낸 공문에 회신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이 판사를 바꿔 달라며 내세운 이유는 ‘재판부의 정치 영역 판단’이지만, 대리인단 등 내부에선 지난 16일 재판부가 주 전 위원장 측의 직무정지 이의 신청을 배척했을 때 결정문에 담은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8월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실 앞에 취재진들이 모여 있는 모습. 뉴스1
앞서 법원이 주 전 위원장 직무정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선 정미경 전 최고위원이 8월17일에 사퇴한 점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후 국민의힘 측은 이의 신청 때 이 부분을 강조했다. 정 전 위원 사퇴로 당연직인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와 성일종 정책위의장, 그리고 선출직인 김용태 당시 청년최고위원 등 9명의 최고위 구성원 중 3명만 남아있기에 최고위 기능은 상실됐단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최고위 기능이 완전히 상실했다거나 중대한 사정변경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주 전 위원장 측 이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국민의힘 측 변호인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최고위원 전원이 사퇴했어야만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단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종전 당헌에도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의 상황을 비대위 출범 요건으로 했지 ‘완전 상실’로 본 건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 결정문에 담긴 내용을 본 국민의힘 및 대리인단 사이에선 “결정문 내용상 ‘1명도 빠짐없이 전원 사퇴해야 비대위를 꾸릴 수 있다’는 심리가 재판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특히 국민의힘은 ‘정진석 비대위’를 새로 띄우기 위해 당헌상 비대위 출범 요건을 선출직 최고위원 및 청년 최고위원 5인 중 4인 이상 사퇴 등으로 바꿨다. 다만 “최고위 기능이 완전히 상실해야만 한다고 한다면 바꾼 당헌도 무효라 하는 것 아니냐”며 대리인단 내부에선 위기감이 흐른다. 대리인단은 오는 28일 열릴 심문기일에서 당헌 개정 및 이에 따른 비대위 출범은 “정당이 정치적으로 결정할 사안”임을 강조할 예정이다. 지난 14일 심문기일 때 펼쳤던 주장과 같은 취지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뉴스1
결정문 문구에 대한 법조계 의견은 분분하다. 익명을 원한 한 판사는 “(결정문 중) 최고위 기능 완전 상실에 대한 부분은 법원이 절차상 문제에서 나아가 내용을 두고 판단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반면 법관 출신 한 변호사는 “(기능이) 완전히 상실됐다는 국민의힘 측 주장이 있었기 때문에 재판부가 언급한 것일 뿐이지 그 내용을 두고 (재판부가) 왈가왈부한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남부지법은 국민의힘 공문에 대해 “결정이 이뤄진 건 아무것도 없다”면서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에 따라 51부 재판장이 관여할 수 없는 사건을 담당하는 예비재판부가 있고, 이 재판부엔 해당 사유가 있는 사건 외 다른 건은 배당하지 않는다”고 전날 알렸다. 법원이 언급한 권고의견은 ‘친족인 변호사가 근무하는 법무법인 등에서 수임한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이 있을 경우’로, 국민의힘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의 모습.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