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신곡은 2분대, 수리남은 6부작…짧으니까 터진다, 왜?

기자
박건 기자 사진 박건 기자
짧아야 살아남는다. 최근 국내 콘텐트 업계의 제작 트렌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짧게 핵심만 요구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추려면 콘텐트 길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16일 발매된 걸그룹 블랙핑크(BLACKPINK)의 신곡 ‘셧 다운’(Shut Down)은 2분 55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수리남’은 6부작으로 제작돼 러닝 타임이 6시간 11분에 불과하다. ‘K팝은 3분대, 드라마는 16부작’이라는 업계 관행이 깨지면서 짧은 콘텐트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2분대 노래가 음원차트 점령

'애프터 라이크'를 발표한 걸그룹 아이브. 데뷔 이래 2분대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진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애프터 라이크'를 발표한 걸그룹 아이브. 데뷔 이래 2분대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진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콘텐트 길이가 짧아지는 현상은 K팝 시장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최근 주요 음원차트는 2분대 노래들이 점령했다. 멜론 9월 4주차 주간 차트를 보면 상위 10곡 중 5곡 러닝 타임이 2분대다. 걸그룹 아이브(IVE)의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 2분 56초)와 ‘러브 다이브’(LOVE DIVE, 2분 57초), 걸그룹 뉴진스(NewJeans)의 ‘어텐션’(Attention, 2분 58초)과 ‘하입 보이’(Hype boy, 2분 56초), 래퍼 지코(ZICO)의 ‘새삥’(2분 27초) 등이다.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확연하게 달라진 추세다. 2012년 멜론 연간 음원차트 상위 10곡 중 2분대 노래는 한 곡도 없다. 길이가 가장 짧은 곡은 걸그룹 씨스타(SISTAR)의 ‘나 혼자’(3분 26초)이고, 빅뱅(BIGBANG)의 ‘판타스틱 베이비’(FANTASTIC BABY, 3분 50초)와 투애니원(2NE1)의 ‘아이 러브 유’(I Love You, 3분 57초) 등 다른 K팝 그룹들의 노래는 거의 4분에 육박한다. 

K팝이 1분 가까이 짧아진 원인으로는 주 소비층의 달라진 콘텐트 소비 습관이 꼽힌다. 틱톡과 유튜브 숏츠 등을 통해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많이 접하면서 짧은 시간에 핵심만 전달하는 콘텐트에 익숙해졌다는 분석이다. 

아이브 소속사인 스타쉽 이지현 기획마케팅 PR팀 본부장은 “숏폼 콘텐트에 익숙한 요즘 세대들에겐 지루한 부분을 최소화해서 보여줘야 한다. 과감하게 간주를 없애니, 1020 세대에 어필하기 좋은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를 이용한 챌린지 홍보에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애프터 라이크’도 전주 없이 3초 안에 가사가 나오고 간주는 10초 정도로 군무로 채워진다.  


16부작은 옛말, 유튜브선 요약 버전 시청

6부작으로 제작된 넷플릭스 '수리남'. 사진 넷플릭스

6부작으로 제작된 넷플릭스 '수리남'. 사진 넷플릭스

‘미니시리즈는 16부작’이라는 드라마 업계 관행도 무색해진 지 오래다. 제작 환경과 방송사들의 수익 구조가 바뀌면서 지상파·종편·케이블 채널에 12부작 드라마가 늘고 있다. SBS ‘사내맞선’과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JTBC ‘서른, 아홉’ 등이 압축적인 전개로 평가와 흥행 모두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드라마는 이보다도 짧다.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수리남’과 쿠팡플레이 ‘안나’는 6부작이고, 지난 12일 미국 에미상 주요 부문에서 수상한 ‘오징어 게임’은 9부작이다. 이마저도 길다고 느낀 시청자가 적지 않은지 ‘오징어 게임’을 30분으로 요약한 한 유튜브 영상은 조회 수 529만회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너무 많은 콘텐트가 쏟아지면서 길이보다는 밀도가 중요해졌다”며 “사람들이 숏폼에 자주 노출되는 게 다른 콘텐트 소비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오징어 게임' 요약 영상은 조회수 529만회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유튜브에 올라온 '오징어 게임' 요약 영상은 조회수 529만회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OTT가 정착하면서 국내 드라마 팬들의 소비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외국의 시즌제 드라마에 익숙해지고,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서 보는 경향이 생기면서 긴 드라마에 부담을 느끼는 시청자가 늘어났다”며 “제작자들도 이러한 트렌드를 무시할 수 없기에 짧은 드라마가 계속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너무 트렌드만 따라가다 보면 깊이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콘텐트가 사라질 수 있다”며 “문화가 소비주의 중심으로만 흘러갈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