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는 고통 입은 이가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고 말할 때까지 해야 합니다.”
지난 24일 오전 10시쯤 전남 진도군 고군면. 왜덕산(倭德山)에서 열린 위령제에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한 말이다. 그는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지속적인 사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이날 왜덕산에서 열린 위령제에서 “일본이 한때 한국에 아주 큰 고난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라며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왜덕산은 조선 백성이 명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왜군 수군 시신을 매장해준 곳이다. ‘왜인들에게 덕을 베풀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추모사를 통해 “425년 전 명량해전에서 목숨을 잃은 일본 수군을 진도 주민들이 묻어줬다”며 “이 사실을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2016년 9월 전남 진도 울돌목에서 열린 ‘명량대첩 해전재현’. 오른쪽은 컴퓨터그래픽스(CG)로 공개될 미디어 해전재현. 프리랜서 장정필
‘시체는 적이 아니다’ 왜군 묻어준 조선 백성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날 위령제를 통해 일본 측의 사죄를 거듭 촉구했다. “임진왜란·정묘호란 때 일본 병사들은 큰 공을 세워보겠다고 이 땅(조선) 조상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고 했다. 앞서 그는 지난해 11월 8일 일본 오카야마(岡山)현에 있는 한 이총(耳塚, 귀 무덤) 앞에서 사죄의 뜻을 밝혔다.
이총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베어 간 조선군과 백성의 귀를 매장한 곳이다. 훗날 귀와 함께 코까지 대거 묻은 사실이 드러나 이비총(耳鼻塚, 귀·코 무덤)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24일 오전 전남 진도군 고군면 왜덕산 위령제에 참석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왜덕산에는 1597년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왜군 수군들의 무덤이 있다. 연합뉴스

일본 교토에 있는 귀무덤의 모습.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조선군과 양민을 학살해 그 증거로 코나 귀를 베어낸 뒤 묻은 곳이다. 중앙포토
“조선인의 귀·코 베어 전공 계산했다” 사죄
명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배 13척으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격파한 전투다. 괴멸 위기에 몰린 조선 수군은 울돌목(鬱陶項)의 빠르고 험한 물살을 이용해 대승을 거뒀다. 명량해전 때 왜군들이 묻힌 왜덕산은 울돌목에서 직선거리로 10㎞가량 떨어져 있다.
전남도와 진도군, 전문가 등은 이번 하토야마 전 총리 일행의 방문이 의미가 크다고 한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하토야마 전 총리의 공식적인 사과를 계기로 일본은 과거 역사적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한·일 양국 간 화해와 공존의 분위기를 확대 조성하는 기회를 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캡션명량해전 당시 숨진 왜군이 묻힌 전남 진도군 왜덕산 전경. 현재는 간척지가 된 바닷가에 왜군의 시신이 밀려오자 진도 백성들이 한 곳에 매장을 해줬다. 프리랜서 장정필
첨단 미디어로 부활한 ‘13척 VS 133척 전투’
그동안 명량대첩축제는 해상전투를 어선 수십척을 동원해 바다 위에서 재현해왔다. 해전 재현 때마다 어선 60여 척에서 쏘아대는 화포와 불꽃 등이 압권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는 주무대에 설치한 가로 20m 세로 5m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컴퓨터그래픽스(CG)로 제작한 해상전투 장면을 상영한다. 드론 300여 대 펼치는 드론 일자진과 드론 불꽃쇼 등도 해전 분위기를 띄운다. 출정식 후에는 케이팝 밴드인 '이날치 밴드'의 축하공연과 스토리를 담은 폭죽쇼 등이 이어진다.

캡션2016년 9월 전남 진도 울돌목에서 열린 ‘명량대첩 해전재현’. 올해는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을 격파한 전투를 컴퓨터그래픽스(CG)로 재현한다. 프리랜서 장정필
강강술래 경연·저잣거리 체험도
축제장 주변에는 관광 명소도 많다. 진도에는 운림산방, 진돗개테마파크, 향토문화회관, 송가인 마을 등이 있다. 해남에는 대흥사, 달마산, 공룡박물관, 자연사박물관, 고산 윤선도유적지 등이 있다. 울돌목을 가로지르는 명량해상케이블카는 축제 기간 관람료 할인과 함께 오후 9시까지 연장 운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