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나주 혁신도시 내 한전 본사 건물. 프리랜서 장정필
한국예탁결제원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한전채는 23조3500억원(24일 기준) 규모로 발행됐다. 이미 작년 전체 발행액(10조3200억원)의 두 배를 훌쩍 넘겼다. 누적 발행액도 지난달 기준 52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말(38조1000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한전이 채권을 찍어내는 배경엔 대규모 적자가 있다. 한전은 에너지 가격 급등과 전력 구매 부담 상승 등으로 올 상반기에만 14조303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 수준이었던 지난해 연간 적자 5조8601억원을 크게 뛰어넘었다. 이를 메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기업 자금줄이 막히는 '돈맥경화'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월 8조원을 크게 넘겼던 전체 회사채 발행액은 시장 불안 심리가 커진 이달엔 1조 원대로 크게 줄었다. 일부 기업은 당초 예정했던 공모채 발행 일정을 내년 초로 연기하기도 했다. 반면 한전은 이달에만 채권 발행으로 1조5900억원을 조달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20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한전채 발행이 급증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여타 신용채권 수요를 구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채권 시장 안팎에선 한전채 발행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금융권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가 심각해진 건 적자가 심각한 한전이 쏟아내는 채권을 시장에서 받아준 영향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금융 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유동성 문제가 없도록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와 증권가에선 올 한해만 한전에서 30조원 넘는 적자가 쌓일 것으로 예상한다.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인 가스·원유 가격 등의 고공행진은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다. 지금 추세면 올해 한전채 발행액도 누적 적자 폭과 비슷하게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분간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효과'가 이어지면서 다른 기업들의 돈 가뭄도 쉽게 풀리기 어려운 셈이다.
다만 채권 금리가 계속 오르는 건 한전으로서도 부담되는 부분이다. 시중 금리 인상 속에 이달 20일엔 5.9%로 신규 채권을 발행했다. 연초만 해도 2%대 중반이었지만 어느덧 3배 가까이로 올랐다. 자금 확보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향후 갚아야 할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편에선 이달 발행한 채권 일부가 목표치에 미달하는 등 시장의 유동성 쇼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가운데)을 비롯한 경제 관련 부처장들이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 금융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김주현 금융위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정부는 한전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채권 발행 한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전) 회사채 발행 한도를 지금보다 높여야 자금을 융통하면서 경영이 가능하기에 늘려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엔 발행 한도를 확대하는 법 개정안이 여럿 올라가 있다. 해당 법안은 연말 정기국회 내에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내년에도 한전채 발행이 이어질 확률이 높지만, 그 규모는 한전 경영 실적, 국회 입법 상황 등에 따라 유동적인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