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오른쪽 둘째)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장진영 기자
한국예탁결제원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한전채는 23조3500억원(24일 기준) 규모로 발행됐다. 이미 작년 전체 발행액(10조3200억원)의 두 배를 훌쩍 넘겼다. 누적 발행액도 지난달 기준 52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말(38조1000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는 신용등급 AAA 한전채가 쏟아지면서 AA급 이하 일반 회사채가 투자자에게 외면받는 그림자도 커지고 있다. 초우량·고금리인 한전채 때문에 다른 기업은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것이다.
기업 자금줄이 막히는 ‘돈맥경화’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월 8조원을 크게 넘겼던 전체 회사채 발행액은 시장 불안심리가 커진 이달엔 1조원대로 크게 줄었다. 일부 기업은 당초 예정했던 공모채 발행 일정을 내년 초로 연기하기도 했다. 반면에 한전은 이달에만 채권 발행으로 1조5900억원을 조달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20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한전채 발행이 급증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여타 신용채권 수요를 구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소한 연말까지 한전채의 추가 발행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전은 현재 한 달에 수차례 채권을 발행하고 있는데 이를 멈추는 순간 심각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누적된 적자로 가용 자금이 부족한 만큼 전력거래대금 지급, 인프라 운영 등이 줄줄이 막히면서 부도 같은 ‘핵폭탄급’ 악재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증권가에선 올 한 해만 한전에서 30조원 넘는 적자가 쌓일 것으로 예상한다.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인 가스·원유 가격 등의 고공행진은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다. 지금 추세면 올해 한전채 발행액도 누적 적자 폭과 비슷하게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분간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효과’가 이어지면서 다른 기업들의 돈 가뭄도 쉽게 풀리기 어려운 셈이다.
다만 채권 금리가 계속 오르는 건 한전으로서도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시중 금리 인상 속에 이달 20일엔 5.9%로 신규 채권을 발행했다. 연초만 해도 2%대 중반이었지만 어느덧 3배 가까이로 올랐다. 자금 확보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향후 갚아야 할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전) 회사채 발행 한도를 지금보다 높여야 자금을 융통하면서 경영이 가능하기에 늘려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