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조가 휴짓조각 됐다…AT1 채권 뭐길래 아시아 증시도 출렁

크레디트스위스(CS)가 발행한 약 22조원 규모의 채권이 ‘휴짓조각’으로 전락했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CS를 인수하며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CS 위기에 따른 여진은 여전히 남아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 관련 뉴스를 살피고 있다. 스위스 최대 금융기관 UBS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위기에 빠진 세계적 투자은행 CS를 32억 달러에 인수했다. 뉴스1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 관련 뉴스를 살피고 있다. 스위스 최대 금융기관 UBS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위기에 빠진 세계적 투자은행 CS를 32억 달러에 인수했다. 뉴스1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이날 UBS의 CS 인수와 관련해 “CS의 채권 가운데 160억 스위스프랑(약 22조 47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AT1)을 모두 상각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는 채권 가치가 사실상 ‘0’이 됐다는 의미다. AT1은 은행 등 금융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은행의 자본 비율이 기준치보다 떨어지면 투자자 동의 없이 상각하거나 보통주로 전환해 은행의 자본을 늘려주도록 설계됐다. 코코본드라고도 불린다.

이번에 상각된 AT1 규모는 유럽 AT1 시장 역사상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전까지 상각 규모가 가장 컸던 2017년 스페인 포플라르은행의 13억 5000만 유로(약 1조 8900억원) 상각 대비 10배를 훌쩍 넘는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핌코·인베스코·블루베이펀드와 같은 자산운용사가 대량의 CS AT1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글로벌 채권 시장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아시아 은행이 발행한 AT1 가격이 줄줄이 떨어졌다. 홍콩에 본사를 둔 뱅크오브이스트아시아와 태국 카시콘은행의 AT1 채권은 각각 장중 8.6센트, 4.3센트 하락해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HSBC은행이 발행한 AT1 채권도 5센트 넘게 내려앉았다. 


AT1 보유 물량이 많은 일부 은행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폭락하며 증시도 흔들렸다. 홍콩 증시에서 HSBC홀딩스 주가는 6.6%, 스탠다드 차타드(SC)는 5.6% 떨어졌다. 이날 한국 코스피(-0.69%)를 비롯해 일본 닛케이평균주가(-1.42%), 중국 본토 상하이종합지수(-0.48%), 선전성분지수(-0.32%)도 일제히 하락했는데, 글로벌 채권 시장의 불안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은행(IB) 나타시스의 게리 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사태가 AT1 채권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며 "투자자들의 AT1 투매와 리스크 재조정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채권 투자자들은 UBS의 CS 인수 과정에서 CS의 주주만 보호받고 채권 보유자는 사실상 희생양이 됐다며 반발했다. CS의 모든 주주는 22.48주당 UBS 1주를 받게 된다. 프랑스 자산운용사 아킬라의 패트릭 카우프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블룸버그에 “주주들이 아닌 AT1 보유자들에게 돈이 갔어야 했다”며 “AT1 시장에 명백히 타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AT1이 고위험 자산인 만큼 AT1 투자자를 보호하는 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는 반론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