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에 분리수거 시키면 안된다?…"헌법 불합치" 헌재 결론

헌법재판소 전경. 중앙포토

헌법재판소 전경. 중앙포토

 
경비원에게 음식물 쓰레기통 세척 같은 경비 외 업무를 시키는 걸 일괄 금지하는 현행 법 조항은 헌법과 맞지 않으니 개정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23일 헌재는 경비업자가 허가받은 업무 외 경비원을 종사하게 할 수 없도록 하고(경비업법 제7조 5항) 이를 어길 시 경비업 허가를 취소(제19조 1항 2호)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 재판관 9명 중 6명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경남 김해시의 한 아파트 위탁관리업체 A는 지난 2017~2018년 경비원에게 음식물 쓰레기통 세척, 재활용 분리수거 등을 시키다 경찰에 적발돼 2019년 9월 경비업 허가 취소 처분을 받았다. A 업체는 이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창원지법에 경찰을 상대로 소송을 내며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신청했다. “경비업무 이외의 업무를 일체 수행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위반 경위나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경비업 허가를 반드시 취소하도록 하는 건 비례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주장이었다.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가 2020년 12월부터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심리해 왔다.

경비업법에 이런 금지조항을 둔 건 경비원이 경비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민간이 하는 일이지만 경비업은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대한 위험을 방지하는 일종의 준경찰력으로 여겨진다. 그렇다 해도 “경비업무의 전념성이 훼손되는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비(非)경비업무의 수행을 일률적이고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입법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이라는 게 이날 헌재의 판단이다. 경비업무에 지장 없는 범위 내에서 비경비업무를 수행할 수도 있는 데다가, 시설에 따라 경비·관리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게 효율적인 경우도 있을 거라는 거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모든 비경비업무가 경비업무의 전념성을 훼손하는 데 있어 미치는 효과가 동일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위험 발생의 가능성을 동일한 정도로 증가시키는 것도 아니다”라며 “허가받은 경비업 전체가 취소 대상이 되어 경비업을 전부 영위할 수 없게 되는바, 경비업자의 직업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24년 말을 시한으로 개선 입법이 이뤄지기 전까지 해당 조항의 적용을 중지하라고 했다. ‘경비업무의 전념성을 직접 훼손하는 업무’는 시키면 안 되는데, 지금 단순 위헌 결정을 내리면 그런 경우에도 허가를 취소할 수 없게 돼 버리기 때문이다.

경비업계 “어차피 할 일…양지화해 업무 범위 정해야”

지난 20일 오전 경비원 사망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경비노동자들이 '故 대치동 아파트 경비노동자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불안과 갑질 피해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 20일 오전 경비원 사망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경비노동자들이 '故 대치동 아파트 경비노동자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불안과 갑질 피해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경비 외 업무 금지 조항은 1995년부터 있었지만 대부분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이 관리 보조 업무를 함께 맡아왔다. 오랫동안 사문화됐던 조항이 최근에 와 일부 업체가 경찰에 적발돼 허가가 취소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경비 외 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을 뽑아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아파트 입주민들은 경비원들을 해고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 2021년 공동주택 경비원에 한해 미화 보조, 주차 관리 등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공동주택관리법이 개정됐다.

경비업계에선 “경비 외 업무를 양지화해 업무 범위를 정해놓는 게 낫다”는 의견이다.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었던 이모 씨는 “어차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비업계 관계자는 “금지하는 법이 있어도 실제로 경비원들이 관리 업무도, 청소도 다 해왔다”며 “경비원으로 계약하기 위해선 사실상 고용주인 관리소장한테 잘 보여야 하니까 그렇다. 법으로 막아서 될 일이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