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은 전날 몬테네그로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로부터 이들의 십지(열 손가락) 지문과 머그샷 등 사진 자료 등을 송부받아 경찰청 보유 자료와 대조해 신원을 확인했고, 이를 몬테네그로 인터폴은 물론 테라·루나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에도 통보했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해 8월 15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암호화폐 전문 미디어업체 코이니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코이니지 유튜브 캡처
중앙일보 취재 결과, 이들이 소지하던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엔 실명과 생년월일, 사진 등이 본인의 것과 동일하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다만, 수하물에서 발견된 벨기에 신분증과 여권은 ‘왕(Wang)’ ‘응우옌(Nguyen)’과 같은 가명 등으로 위조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당국은 이들이 몬테네그로에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도주하려던 것으로 보고 있지만, 두바이를 경유해 또 다른 목적지로 향하려던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테라·루나의 폭락으로 전 세계 암호화폐의 약세장이 이어지던 지난해 5월 18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루나 차트가 띄워져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테라·루나 사건 수사는 지난해 5월 한국 업비트·빗썸 등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됐던 루나가 가치 폭락으로 시가총액 약 48조원이 증발한 뒤 피해자들이 권 대표 등을 사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고발하며 시작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4월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출국한 권 대표 등은 “실패와 사기는 다르다”(지난해 6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 “때가 되면 수사에 협조할 계획”(지난해 8월 코이니지 인터뷰)이라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해 왔지만, 지난해 9월 가족을 싱가포르에 남겨둔 채 두바이를 경유해 세르비아로 향하는 등 도피 생활을 해 왔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지난해 5월 부활한 직후 1호 사건으로 테라·루나 폭락 사태 수사에 착수해 약 10개월째 이어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 신정동 서울남부지검 로비의 모습. 뉴스1
권 대표의 도피로 그간 한국 검찰의 수사는 테라폼랩스 공동창업자인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총괄대표 등 국내 관계자에 집중됐다. 이들은 ▶투자계약증권인 루나를 무단으로 발행해 판매하고 ▶테라·루나 알고리즘의 핵심인 ‘1테라=1달러’ 가치 고정(페깅)과 안정적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지속해서 투자자를 모집했으며 ▶테라가 실제 블록체인 기반의 간편결제 결제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등 허위 정보를 퍼뜨려 투자를 받거나 전자상거래 업체와 업무협약을 맺고 루나 가치를 부풀린 한편 ▶이 과정에서 테라 홍보를 위해 브로커에 거액의 루나를 건넸다는 혐의(자본시장법·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기·배임·배임증재·유사수신 등)를 받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날 미 검찰이 권 대표를 사기·시세조종 등 8개 혐의로 기소하면서 권 대표 등의 신병이 미국으로 인도되거나 강제추방돼 미국·싱가포르로 향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검·경은 한국만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한 데다 체포 직후 최초 통보한 국가도 한국인 만큼 국내 송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