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유착으로 풍비박산 난 조직에
대통령 측근이 개혁 맡은 건 코미디
정부, 기업 동원한다는 오해 불러
정치 거리 둬야 하는 재계도 난감
대통령 측근이 개혁 맡은 건 코미디
정부, 기업 동원한다는 오해 불러
정치 거리 둬야 하는 재계도 난감
김 회장은 자유시장경제 신봉자를 자처한다. 지난달 전경련에 들어가면서 “(노무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경제·산업정책을 다뤘다.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이 왔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정책실장 때 시장 흐름을 무시한 부동산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시장이 왜곡되고, 집값은 치솟았다. 당시 “종합부동산세가 8배 오르자 세금 폭탄이라 하는데, 아직 멀었다”며 특정 지역·계층을 적대하는 정책으로 갈등을 키웠다. 지난 대선 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그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경제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시장경제를 내세워 자유주의자처럼 행세한다.”
전경련은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조직이다. 김 회장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왔다”고 했다. 정치 때문에 망한 곳에 정권과 가까운 정치인이 들어앉아 개혁한다는 게 코미디다. 당장은 정부와 소통이 되고, 대통령 측근이 들어오니 힘도 붙는 것 같다. 한일 경제 사절단에 4대 그룹 총수가 참석하자 전경련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4대 그룹은 전경련이 아니라 대통령실이 요청해 참석한 것이다. 견강부회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다. 어렵다고 남의 힘, 그것도 정치인의 힘을 빌리면 근본 해결이 안 된다. 훗날 독이 돼 돌아온다.
김 회장 개인으로도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자칫 ‘자리 사냥꾼’으로 비칠 수 있다. 2006년 교육정책 문외한이라는 비난에도 교육부총리를 맡았다가 중도 하차했다. 이번엔 고사했다고 한다. 3개월만 한다고 했다가 6개월로 늘렸다. 벌써 한 달 넘게 흘렀지만, 정상회담 같은 정부 일정 쫓아다니기 바쁘다.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이 있다. 윤석열 정부에도 좋을 게 없다. 정부 이벤트에 전경련을 들러리 세운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김 회장 앞세워 기업을 압박하는 모양새로 비칠 우려도 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전경련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용산은 개입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정말 뜻이 그렇다면 그를 말렸어야 했다.
가장 난감한 건 재계다. 정치와 거리를 두며 조심해 왔는데, 일이 꼬였다. 김 회장과 엮이는 순간 보수 정부에 줄 섰다는 구설에 휘말린다. 그렇다고 협조를 안 하자니 찜찜하다. 서슬 퍼런 정권 초인데… 후임 회장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4대 그룹 전경련 복귀에 대해 김 회장은 “그렇게 먼 얘기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4대 그룹은 내키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정치색 짙은 김 회장이 들어가는 바람에 부담이 커졌다. 사업하기도 힘든데, 우리를 그냥 내버려 뒀으면 한다.”
게이단렌도 대기업 로비 창구라는 아픈 역사가 있다. 위기 속에서도 정치인·관료·학자 등 외부 인사를 회장으로 영입한 적이 없다. 기업 일은 기업 스스로 결정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지금은 정치 헌금을 끊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경제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상장사 1500여 곳이 회원으로 참여한다.
전경련은 기득권 유지와 재벌 옹호에 급급하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돼 있다. 회장을 못 찾아 이 사람 저 사람 등 떠민 게 20년이 넘었다.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 국민 신뢰를 받는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게이단렌이나 미국 상공회의소처럼 정부에 할 말은 할 수 있다. 그래야 회장을 하겠다는 인물이 나오고, 4대 그룹도 복귀할 것이다. 정파 냄새 물씬 풍기는 6개월 시한부 회장이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
글=고현곤 편집인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