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보채. 사진 셔터스톡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는 중국 음식 중에서도 가장 진귀하고 특별한 요리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독특하기로는 상어 지느러미를 잘라 요리한 샥스핀, 바다제비집을 해체해 끓이는 제비집 수프가 있고, 맛있기로는 수행 중인 스님도 냄새에 이끌려 담장을 뛰어넘어 맛봤다는 불도장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두 으뜸은 아닌 것 같다.
요리 이름으로만 봐서는 단연코 팔보채(八寶菜)가 최고다. 한두 가지도 아니고 무려 여덟 가지 보물 식재료를 엄선해 요리했다는 것이니 동서고금 막론하고 이보다 더 엄청난 요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먹어 본 사람은 모두 알다시피 팔보채는 실제로 그렇게 대단한 요리는 아니다. 이름과는 달리 우리나라 웬만한 중화반점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고 재료 또한 보물과는 거리가 멀다. 보통 해삼, 오징어, 소라, 새우, 죽순, 표고버섯, 양송이버섯, 닭고기 등을 볶아 만드는데 물론 맛있기는 하지만 팔보(八寶)라는 이름은 가당치도 않다.
그런데 왜 팔보채라고 어마어마한 이름을 지었을까? 속된 말로 부풀려 말하기 좋아하는 중국식 '대륙뻥'의 산물인가?
일단 팔보채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우선은 먹는 사람의 오해다. 팔보는 여덟 가지 보물이 아니라 그저 많다는 뜻, 다양한 재료를 섞어 요리했다는 의미다. 많다는 숫자를 말하려면 백(百)이나 천(千)과 만(萬)도 있는데 왜 굳이 팔(八)일까 싶지만 팔은 우주처럼 크다는 뜻이다. 『주역』에서 우주는 팔괘로 구성돼 있다고 한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팔보채의 팔보에는 단순하게 많다는 것, 이것저것 잡다한 재료를 섞어 요리했다는 것 이상의, 중국문화에서 심정적으로 느껴지는 독특한 '무엇'이 있는 듯싶다.
팔보라는 이름이 붙은 많고 많은 중국 음식을 보면 그렇다. 다양한 중국 팔보 요리 중 가장 흔하고 대중적인 음식이 팔보죽이다.
유명 식품업체에서 포장식품으로 만들어 팔 정도로 자주 먹는다. 그래서인지 중국에 출장가면 호텔 조식으로도 많이 나온다.
찹쌀과 팥, 녹두, 대추, 땅콩, 백합, 율무 등등 여러 재료를 섞어 끓인 팔보죽은 평범하지만 역사가 깊다. 13세기 후반 송나라 수도였던 절강성 항주의 풍경을 묘사한 『무림구사』에 나오니 무려 700~800년 전부터 먹었다. 무림구사에는 납팔죽(臘八粥)이라고 했는데 섣달 초팔일에 먹는 절기음식으로 소개돼 있다.
사월 초파일이 석가 탄신일인 반면에 음력 12월 8일인 섣달 초파일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날이다. 도를 이룬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뜻에서 성도재일(成道齋日)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여덟가지 보물을 뜻하는 팔보(八寶)라는 이름을 죽 이름으로 쓴 것도 아마 여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어쨌든 팔보죽은 이래저래 특별한 음식인데 중국에서는 평소 뿐만 아니라 지금도 특히 섣달 초파일이나 동짓날 등에는 개인과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팔보죽을 먹는다.
우리한테는 낯설지만 중국에서는 꽤 알려지고 역사가 있는 음식으로 팔보두부(八寶豆腐)가 있다. 부드러운 연두부에 버섯과 잣, 씨앗, 닭고기와 절인 돼지고기 등 여덟 가지 이상의 재료를 닭고기 육수로 조리하는데 얼핏 우리 순두부와 닮은 부분도 없지 않다.
18세기 청나라 전성기 때의 문인 원매가 쓴 『수원식단』에 요리법과 함께 일화가 적혀 있다. "황제가 서상서에게 조리법을 하사했는데, 이때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준 황실 주방에 일천냥을 지불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강희제가 강남 순시 때 강소성 출신으로 상서라는 고위직에 있던 서건학에게 조리법을 전수해 유명해졌다는 요리다. 소문의 진위여부는 파악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황제가 조리법을 하사했을 정도로 특별한 요리였기에 두부요리 앞에 '팔보'라는 이름이 붙었다.
팔보죽과 팔보두부에서 비롯됐는지, 이후 독특한 요리, 맛있는 음식에는 팔보라고 이름 짓는 것이 유행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중국에는 다양한 팔보 음식이 있으니 이를 테면 상해에는 디저트의 일종으로 찹쌀로 만든 팔보반(八寶飯)이 있고 광동에는 채소요리인 팔보소채(八寶素菜), 북경 등지에는 찹쌀과 대추 견과로 속을 채운 팔보닭과 오리(八寶鷄, 鴨)등등이 있다.
그러면 우리한테 익숙한 팔보채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 한국에는 팔보채, 일본에는 핫보사이라는 중국음식이 있지만 정작 중국에서 팔보채, 즉 빠바오차이라는 요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채(菜) 자체가 요리라는 뜻이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앞서 말한 구체적인 팔보 요리들이 있을 뿐이다.
흔히 팔보채의 유래로 청나라말 서태후가, 혹은 재상인 이홍장이 좋아해서 생겼다는 말이 있지만 대부분 일본에서 만들어진 유래설이다. 두 사람은 모두 청일전쟁 패배와 관련 있고 청나라를 말아 먹은 주역들이니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다.
팔보채에 얽힌 잡학상식인데 중국음식 먹을 때 화제거리로 알아둬도 굳이 손해 볼 것은 없겠다.
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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