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미국 대선에 재차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내가 재선되면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에서 태어나면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 시민권 제도’를 막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올린 3분 남짓 영상을 통해 ‘어젠다 47’ 공약을 직접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국경을 불법적으로 넘는 수백만 명 이민자들의 미래 자녀들은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이 돼 복지, 세금이 투입되는 건강관리, 투표권을 비롯해 셀 수 없는 정부 혜택을 받는다. 상상할 수 있느냐”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내가 다시 당선되면 그 첫날 법률의 올바른 해석에 따라 연방 기관들이 불법적인 이민자들의 아이들에게 미국 국적을 허용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도입된 수정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경우’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당초 해방된 흑인 노예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지만, 1898년 미 연방 대법원이 중국 이민자의 자녀에게도 같은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부모의 국적과 관계없이 미국 땅에서 태어나면 시민권을 부여하는 미국의 속지주의 국적 제도의 근간이 됐다.
다만 자녀의 미국 시민권 획득을 위해 원정출산을 감행하거나, 멕시코 접경 지대에서 국경을 넘는 산모들이 적지 않는 등 사회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영상에서 “원정출산은 불공정한 관행”이라며 “얼마나 끔찍하고 지독한 관행이냐”고 언급했다. 비영리 센터인 미국이민정책센터(CIS)가 2019년 국무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해 자녀의 시민권 획득을 목적으로 미국에 입국하는 이들은 약 3만 3000명으로 추산됐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이 가운데 한국인의 원정 출산 규모는 최소 3000명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같은 주장을 한 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대선 때도 같은 공약을 냈지만, 재임 기간 행정명령에 서명한 적은 없다. 이와 관련 USA투데이는 “재임 당시 트럼프의 변호사들이 위헌 가능성 때문에 법원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헌법 조항을 정부의 행정명령으로 뒤집을 순 없다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실제 실현 여부를 떠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민 정책을 대선의 쟁점으로 끌어 올리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 캠프는 “트럼프는 2015년부터 같은 공약을 약속했지만 4년 임기(2017년 1월~2021년 1월) 내내 이를 지키지 않았다. 그가 또다시 공허한 약속을 하고 있다”고 밝히며 트럼프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