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히로시마 그랜드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확대세션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윤 대통령 왼쪽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2023.5.21/뉴스1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도 미·중 관계가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이라고 언급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이 변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결정적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본 G7 정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미·중 관계가 ‘곧 해빙이 시작될 것’(thaw very shortly)이라 했다(2023.5.21).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발언한 만큼 그 발언에는 권위가 담겨 있다. 중국 측도 이 중요한 소식에 대해 응답했다. 그러나 중국의 응답은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G7 정상회의가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공급망에서 중국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결정에 ‘G7은 중국 관련 의제를 고의로 조작하고(執意操弄) 중국을 먹칠하고 공격했으며, 중국 내정을 난폭하게 간섭했다’(2023.5.20)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G7 모임을 ‘반중국 워크숍’(anti-China workshop)이라고 했다(2023.5.22).
도대체 미·중 사이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반응을 보면 적어도 한국에서 보도하는 그런 식의 극적인 데탕트는 아닌 것 같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 근본적인 변화가 없어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트럼프 시기보다 더 정교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디커플링’(decoupling)이란 처벌적인 단어가 주는 중국과의 단절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자기방어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언어적으로 순화를 꾀했다.
원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사용한 ‘디리스킹’이라는 단어를 이번에 미국이 공식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미국과 유럽 사이에 중국 견제를 둘러싼 의견 충돌을 해결했다. 유럽은 자국의 사활을 위해서 중국과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조정하면서까지도 ‘탈중국화’와 ‘전략적 공급망’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유럽의 언어를 수용하였고, 유럽은 안보 영역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전략적 공급망 구축에 동의함으로써 양측은 중국에 대항하는 ‘원팀’을 형성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중 갈등을 불안하게 주시해왔던 ‘글로벌 사우스’(이전에는 ‘제3세계’로 불리었음)에게 주는 신호도 된다. 예를 들어, 이번 G7 정상회의에는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인도, 브라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코모로, 쿡 제도 등 8개국의 정상도 초청되었다. 특히 G20의 현 의장국과 차기 의장국인 인도와 브라질의 참석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G7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신흥 경제권 중 두 곳이자 미·중 진영에 속하지 않고 관망세를 취하는 세계 100개국 이상의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주자다. 이로써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 시도에 대한 잠재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신흥 중견국 국가들을 참여시킨 것이다. 결국 이번 G7 회의는 언어적 순화를 통해 대중국 견제를 주도하는 미국의 외교적 성공작으로 볼 수 있다.
중국도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중국 외교부가 불쾌감을 표현한 것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사도 ‘디리스킹’용어는 ‘낡은 술을 새 병에 담은 것’(新瓶装舊酒)뿐이며 언어적 포장이라 깎아내렸다(2023.5.25). 그러면서 표현이 부드러워졌다고 해서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라며,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脱钩)이고, 오히려 디리스킹이 ‘기만적인’(具欺骗性) 표현이라고 혹평했다.
미·중 관계, 수사적 레토릭이 아닌 행동을 봐야
미국은 꾸준히 자국의 첨단 산업 경쟁력을 향상하고, 중국과의 디커플링에서 올 수 있는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동맹 결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큰 틀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동맹이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이와 대척점에서 북·중·러 관계도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는 미·중 갈등이 주축이 된 근본적인 신냉전적 구조의 구축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여전히 중국을 ‘주요 도전’(pacing challenge)으로 인식하고, 중국을 국제 질서에 대한 가장 심각한 ‘장기적 도전’(long-term challenge)으로 정의하며, 반중국 전선에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을 참여시켜 연합전선을 펼치는 ‘통합 억제’(integrated deterrence)라는 접근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패러다임은 꾸준히 일관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결국 미·중 관계는 수사적인 레토릭이나 갈등 관리 회동을 보는 것보다는 행동을 통해 판단해야 한다. ‘디리스킹’은 미·중 해빙 신호라기보다는 미국이 동맹을 견인하기 위한 외교적 수사다. 바이든의 정교한 중국 때리기 전략은 안 바뀌었다.
한국은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미·중 관계를 평가할 때에는 단기적인 변화보다는 장기적인 전략과 동향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계속해서 전이해가는 국제 상황과 미·중 양국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이며, 주도면밀한 외교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