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쇼핑몰, 사진설명 없는 건 차별"…시각장애인 2심도 승소

이연주 한국시각방야인연합회 사무총장(왼쪽)과 이삼희 한국디지털접근성진흥원 원장이 8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온라인 쇼핑 차별' 소송 2심 선고가 끝나고 기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연주 한국시각방야인연합회 사무총장(왼쪽)과 이삼희 한국디지털접근성진흥원 원장이 8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온라인 쇼핑 차별' 소송 2심 선고가 끝나고 기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시각장애인들이 온라인 쇼핑몰을 상대로 “상품 사진 설명이 없는 것은 차별”이라며 소송을 제기해 2심에서도 승소했다.

8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6부(부장 김인겸)은 시각장애인 963명이 온라인쇼핑몰 3사(SSG닷컴, G마켓, 롯데쇼핑) 상대로 제기한 적극적 조치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쇼핑몰들에게 판결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상품 규격·성분 등을 화면낭독기(스크린 리더·문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기)로 들을 수 있도록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해당 웹사이트엔 상품에 관한 필수 정보나 광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대체 텍스트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은 채 상품을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며 “웹사이트를 이용하려는 원고 등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행위를 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고”고 명시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전자정보 이용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를 고려하지 않는 기준을 적용해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를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하고 있다.

 
 온라인쇼핑몰들은 ‘사기업은 웹사이트에 대체 텍스트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 지능정보화기본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웹사이트 접근성 보장 여부를 판단하는 데 사기업 웹사이트와 국가기관 웹사이트 사이에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할 정도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법인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대해 접근성 보장 여부를 판단하는 데 지능정보화 기본법 등 관련 규정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위자료 지급은 취소…·“차별 고의·과실 없어”

사진 SSG닷컴

사진 SSG닷컴

다만 2심 재판부는 온라인쇼핑몰들에 시각장애인 1인당 1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명령한 1심 판결에 대해선 “차별 행위를 하려는 고의나 과실이 없다”는 이유로 취소했다. 현행법상 웹 접근성을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사기업 입장에서 지능정보화기본법 등에 나온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거다. 


특히 2심 재판부는 “(이들 쇼핑몰이) 2013년 무렵부터 웹사이트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지 사용의 빈도·비중이 매우 높은 온라인 쇼핑몰의 특성, 웹사이트에 상품을 직접 등록하는 협력업체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업계의 현실 등을 고려하면 차별행위가 피고의 고의·과실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법원에 따르면 해당 인터넷 쇼핑몰들은 대체 텍스트 입력 매뉴얼을 협력업체들에게 배포하고, 대체 텍스트를 공란으로 두면 상품을 등록할 수 없게 만드는 등 개선 작업을 해 왔다고 한다.

장애인의 날인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제43회 장애인의 날 맞이 종로구 어울누림 축제에서 한 시민이 시각장애인 보행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애인의 날인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제43회 장애인의 날 맞이 종로구 어울누림 축제에서 한 시민이 시각장애인 보행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인 정보격차해소운동본부는 2017년 “온라인 쇼핑몰들이 각 사이트에 등록된 이미지 파일에 대한 대체 텍스트를 미흡하게 제공해 시각장애인이 상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전국 1·2급 시각장애인 963명과 함께 온라인쇼핑몰 3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판결 선고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고, 1인당 2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1심은 시각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오프라인 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할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차별행위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을 것으로 인정되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금전으로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온라인쇼핑몰들은 항소했다. 2심에서 조정절차가 열리기도 했지만 ‘대체 텍스트가 미흡하면 시각장애인들이 업체 측에 신고하고, 10일 이내에 보완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린다’는 중재안에 양측이 반발하면서 결국 결렬됐다.

“대체텍스트 제공 기준 판단…큰 의미”

시각장애인들의 변호를 맡았던 김재환 변호사는 “웹 접근성 보장 조치의 주체 및 대체 텍스트 제공 관련 기준과 내용을 명확히 판단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면서도 “의뢰인과 상의한 후 상고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재판이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시각장애인 입장에선 쇼핑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데, 재판부의 시각은 여전히 보수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