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부모집 가서 '셀프 효도'…'시댁→친정' 명절 관습이 바뀐다

지난 22일 부산 동래구 안락로타리에 고향을 찾은 귀성객을 반기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22일 부산 동래구 안락로타리에 고향을 찾은 귀성객을 반기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송봉근 기자

 
회사원 이모(37)씨는 이번 추석에 시댁에 가지 않는다. 친정에서 사흘간 머물면서 제사 음식을 만들고 할아버지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남편(41)은 며칠 전 혼자 자기 집(세종시)에 다녀왔다. 추석 연휴에 처가에도 가지 않는다. 이런 식의 '셀프 명절 쇠기'를 한지 약 10년 됐다. 양가 부모가 인정한다. 시부모는 굳이 명절 때 아들 부부가 올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오히려 명절 때 여행가는 걸 즐긴다. 이번 추석 연휴에 오랜만에 고향(경남 밀양)으로 가서 형제들과 보낸다고 한다. 이씨는 "각자 명절 쇠기가 우리 집의 문화로 굳어졌다"고 말한다.

교사 신모(35)씨는 최근 대구의 시부모에게 "추석 때 안 가고 다른 날에 가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대구에 갔다온 데다 명절에 차가 막히는 게 싫어서 이번에는 집에서 쉬기로 했다. 남편도 "부모님이 서운해하니 대구에 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신씨도 "우리 엄마·아빠가 기다리니 친정(분당) 가자"고 권하지 않는다. 신씨는 "갈등을 피하기 위한 묘수가 '셀프 효도'가 아니겠나"라고 말한다.

명절에 '남편 집→아내 집'으로 가던 관습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종전에는 며느리들이 시댁에 가서 음식을 준비하고, 제사상 차리고, 설거지하느라 스트레스가 컸다. 그걸 당연한 문화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균열이 시작됐다. MZ 세대 젊은 부부가 거부한다. 60대 전후의 부모도 달라진다. 며느리나 사위 눈치를 본다. 자식·부모 양쪽 다 명절 때 여행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달라지는 모습은 다양하다. 대학원생 이모(36)씨는 "명절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어느 집에 먼저 갈지를 두고 남편과 다투지 않는다. 지금은 순서 구애받지 않고 잠깐 들렀다가 돌아온다. 시댁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안마기에서 안마를 받다가 돌아온다. 그것도 설에만 그리한다. 추석에는 여행을 간다. 이씨는 "시댁들이 눈치를 보는 게 확실하다"고 말한다. 직장인 김모(34)씨는 "시댁(전북 군산)에 가는 걸 힘들어하니까 남편이 100만원을 준다"고 말한다. 

이런 부부들은 '공평한 명절'을 강조한다. 40대 공무원 임모씨는 명절마다 양가에 머무는 시간이 비슷하다. 추석 당일엔 본인 집에서 지내고, 전날과 다음날은 처가에서 지낸다. 직장인 오모(33)씨는 "명절에는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잔다. 대신 평소에 충청도 처가에서 두어 차례 1박 2일 머물며 농사일을 거든다. 그러면 공평하지 않으냐"고 말한다.


60세 전후의 베이비부머(1955~63년생) 부모의 변화도 눈에 띈다. 며느리 눈치를 많이 본다. 지난 7월 결혼한 새댁 이모(33)씨는 시댁(충남 보령)에 가는 게 부담스러워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씨는 "시부모가 내년 설에는 내려오지 말라고 한다"며 좋아한다. 

김옥녀 숙명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댁 행=희생'이라고 여기고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같이 교육받고 능력이 비슷한데 왜 나만 희생해야 하느냐고 여긴다"며 "남편들도 종전 문화를 따르는 게 무리라고 느낀다"고 말한다. 젊은 부부들이 개인주의에 매우 익숙하다 보니 추석과 설에 남편 집과 아내 집에 번갈아 가는 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베이비부머인 부모도 자신들의 삶을 중시한다. 자식 부부가 오면 불편을 느끼기도 해 앞으로 명절의 '분리 경향'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