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가 작고하기 1년 전인 2010년 아이패드를 처음 내놓고 나서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잡스의 자녀라면 아이패드를 당연히 사용했을 것이란 생각에 던진 질문에 잡스는 예상 밖의 대답을 한 거다.
이어 잡스는 기자에게 “집에서 우리 아들·딸들은 아이패드를 사용할 수 없다”며 “아이들이 집에서 IT 기기를 접하는 걸 철저히 막고 있다”는 자신의 교육 방침을 소개했다.

왼쪽부터 스티브 잡스, 막내 이브, 둘째 리드, 셋째 에린, 그리고 아내 로렌 파월 잡스. 사진에 등장하지 않는 첫째 리사는 혼외자였던 여성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로 사진 속 아이들과는 엄마가 다르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NYT에는 ‘잡스는(하이테크에 대비되는)‘로우테크(low tech)’ 부모였다’는 글이 실렸다. 사진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혼외자와 얻은 첫째 딸, 작가로 성장

첫째 딸 리사 잡스(왼쪽)와 스티브 잡스. 사진 페이스북 캡처

리사 브레넌 잡스가 쓴 회고록 '스몰 프라이'. 사진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스티브 잡스의 첫째인 리사 브레넌 잡스. 사진 X(옛 트위터) 캡처
아빠 앗아간 암 정복 프로젝트 진두지휘하는 아들
잡스는 아내 로렌 파월 잡스(59)와의 사이에서 둘째 리드(아들·31), 셋째 에린 시에나(딸·27), 넷째 이브(딸·25)를 얻었다. 첫째 리사까지 합치면 자녀는 넷이다.
스탠퍼드대 MBA 학생이던 로렌 파월은 혁신적인 기업가 잡스와 금세 사랑에 빠졌다. 이들은 1991년 결혼해 아들 리드 폴 잡스를 얻었다. 잡스의 유일한 아들 리드는 올해 7월 벤처캐피털 '요세미티'를 설립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스티브와 파월이 결혼식을 올린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이름을 땄다.

리드 잡스. 사진 스탠퍼드대 홈페이지 캡처
요세미티는 매사추세츠공대(MIT),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 센터, 록펠러대 등으로부터 2억 달러(약 26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고 자금 조성 목표를 4억 달러(약 5000억원)로 잡았다.

아들 리드와 2007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찍은 사진. 사진 스티브잡스 포토 홈페이지 캡처
리드는 명문 사립고 크리스탈 스프링 업랜드 스쿨을 다녔고, 졸업 후 스탠퍼드 대학에서 역사와 국제 안보를 공부했다. 리드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잡스 가족'이란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건 꺼렸다.

스티브 잡스의 아들인 리드 잡스(왼쪽), 스티브 잡스의 아내 로렌 파월 잡스가 2022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셋째는 디자이너, 막내는 모델 겸 승마선수 활약
셋째인 에린 잡스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잡스의 전기에서 에린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향"이라고 묘사돼 있다. 에린은 아이작슨에게 "스티브 잡스는 나의 아버지이자 애플의 수장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자신의 역할을 꽤 잘해낸다. '역할 저글링'에 능하다"고 소개했다.

2010년 일본 교토로 여행을 간 스티브 잡스와 셋째 에린. 사진 스티브잡스 포토 홈페이지 캡처

이브 잡스가 아이폰14에 혁신이 부족하다며 올린 밈(meme)사진.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말과 포즈를 취한 잡스의 막내 이브.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말을 타고 있는 이브 잡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모델로도 활약중인 이브 잡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 창립자 "자녀엔 유산 X"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건 그가 56세였던 2011년 10월 5일이다. 그의 사망 당시 102억 달러(약 14조원)였던 회사 가치는 지난 7월 시가총액이 사상 첫 3조 달러(약 3975조원)를 넘는 대기록을 세웠다. 3조 달러는 세계 경제 총생산(GDP) 7위 국가와 맞먹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낡은 차고에서 시작된 애플은 창립 47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이 됐다.

2011년 10월 5일. 잡스가 56세로 세상을 떠난 날, 애플 스토어 매장에 적힌 "고마워요 스티브"라는 글귀. AP=연합뉴스
로렌은 "잡스가 생전에 자녀에게 유산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녀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부부가 뜻을 모은 건, 자녀가 각자 알아서 길을 개척하길 원해서였다. 잡스는 소위 벼락부자가 부리는 사치를 경멸했다. 잡스는 아이작슨에게 "애플 상장 후 많은 이들이 롤스로이스 등 고급 차량과 집을 사고, 가족들에게 성형 수술도 시켜줬지만 좋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잡스의 '진짜 유산'은 무엇이었을까. 월터 아이작슨은 거의 매일 저녁 잡스가 큰 테이블에 앉아 아이들과 식사하며 책과 역사 등을 토론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누구도 밥상에서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지 않았다. 또 잡스는 투병 중에도 자녀들과 틈만 나면 여행을 갔다. 아빠 잡스가 가장 주고 싶어했던 선물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잡스표 아빠 찬스 "여기 이틀이 2년 비즈니스 스쿨보다 낫다"
물론 잡스라서 가능했던 '아빠 찬스'도 있긴 있었다. 잡스는 아들 리드가 험난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엿볼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아이작슨의 전기에 따르면 잡스는 리드가 고등학생일 때 애플 중역들이나 다른 IT기업 대표들이 모이는 장소에 데려갔다. 잡스는 아들에게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대단한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줬다. 그러면서 잡스는 "이틀간 네가 여기서 배우는 건 비즈니스 스쿨에서 2년 동안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런 경험들이 쌓여 오늘날의 요세미티 벤처가 탄생했는지 모른다.

2007년 1월 9일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애플 아이폰을 들어보이는 잡스.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