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휴 전남 무안에 있는 할머니 댁에 다녀왔다는 직장인 최모(32)씨는 아이들이 북적이는 시끌벅적한 풍경은 옛일이 됐다고 했다. 최씨는 “8명의 사촌형제가 있지만 유일하게 결혼을 한 사촌누나도 당분간 아이 낳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저출산이 심화하며 지방 곳곳에는 문을 닫는 대형 산부인과가 늘고 있다. 광주 지역에서 25년간 분만을 책임져왔던 문화여성병원은 지난달 30일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산부인과 전문의 5명을 포함해 8명의 전문의가 있던 지역 대표 산부인과 병원이었지만 줄어드는 출생아 수에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같은 달 1일에는 울산 남구에 위치한 산부인과 프라우메디병원이 무기 휴원에 들어갔다. 지난해 울산에서 태어난 전체 신생아의 약 37%가 이 병원에서 태어날 만큼 규모가 있는 병원이었지만 의료인력 수급의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신재민 기자
그러나 이제 분만 전문를 의사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다. 연도별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 현황을 보면 2020년 134명에서 2021년 124명, 2022년 102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마저도 분만을 하는 산과보다는 암이나 내분비질환 등 부인과를 선택하는 이가 많다.
男 산부인과 의사, 15년새 91명→7명 급감
익명을 요구한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빅5 병원에서조차 50~60대 교수 3~4명이 돌아가며 24시간 온콜(on-call) 대기를 할 정도인데 어떤 젊은 의사가 산과에 들어오겠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당직을 꺼려하고 응급상황이 많은 분만실 근무를 선호하지 않는 여자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며 “의료취약지역에 배치할 공중보건의사 등을 감안하면 남자 산부인과 인력이 더 늘어나야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의료계에선 출생아 수 감소로 산부인과 수요가 줄면서 의료 공백이 발생, 다시 저출생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오수영 성균관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자신이 근무하는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산과 펠로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면서 “분만 인프라 붕괴가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까지 오고 있다. 저출산 기조가 이어진다고 하지만 현재 만혼으로 고위험 산모는 점점 늘어나 인력 수급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가 개선 등 정부의 적극적인 유인책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수가 현실화·의료 사고 시 국가 보상 비용 높여야
박중신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분만 시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가 생겼을 경우 국가가 부담하는 보상 비용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분만 사고에선 3000만원의 범위에서 보상을 해주고 있는데 이를 일본처럼 3억원 정도로 올려 의사 개인에 대한 소송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최근 법원이 신생아 뇌성마비의 책임을 물어 의사 개인에게 12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난 사례를 언급하며 “이대로 간다면 10년 뒤엔 정말 분만할 수 있는 병원이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